이명박 정부는 과연 촛불을 끌 수 있을까.

두 달 전 일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던 이 대통령은 본격적인 촛불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강제진압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광장을 폐쇄했고 차벽을 더욱 강화했다. 정부는 대화의 통로를 완벽하게 차단했고 끝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했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촛불을 강제로 끄려고 했을 때 끝까지 남아 이에 저항하고 물대포는 물론이고 강제연행도 불사하는 시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때 촛불집회는 축제처럼 흥겨웠지만 정부가 차벽 뒤로 숨고 집회가 반정부 투쟁으로 비화하려는 순간,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애초에 아무런 정치적 지향이 없는 축제 같은 집회가 갖는 태생적 한계였다.

   
  ▲ 감사원의 정연주 사장 해임요구안을 의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KBS 이사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7일 밤 전경버스 수십 대와 천여명의 전경들이 KBS 여의도 사옥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가운데, 오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여(오른쪽 아래) 공영방송수호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부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을 구속시켰고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을 겨냥해 광고주 불매운동을 하던 네티즌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봇물 터진 듯 다양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포털 사이트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앞세워 MBC 에 광우병 보도와 관련 국민들에게 사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YTN에는 자신의 선거캠프 방송특보 출신이 온갖 무리수를 연출하며 사장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급기야 감사원까지 동원해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는 내놓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고 촛불집회는 눈에 띄게 참석자가 줄어들어 강제진압도 훨씬 수월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는 박빙이긴 했지만 별다른 이변 없이 공정택 후보가 당선됐다. 한때 촛불집회 때문에 답방을 미뤘던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당당히 서울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들어와 진한 우애를 과시하고 갔다.

이 대통령은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6일 인사 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안병만 교육부 장관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재희 복지부 장관 등 임명을 강행했고 한나라당은 압도적인 의석 수를 믿고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등 본격적인 우파개혁에 돌입했다.

두 달 전, 6월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종로 사거리를 가득 메웠던 70만 명의 시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7일 부시 대통령과 회담 자리에서 건넨 이 대통령의 농담에서 그의 자신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어제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시 대통령을 환영했습니다. 뒷전에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촛불과의 전쟁을 방송장악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대통령 방한 반대 집회에서 경찰은 기동대를 투입했다. 경고방송을 내보내는 동시에 곧바로 강제해산에 돌입했고 색소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발사하기도 했다. 7일 저녁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여의도 KBS 앞 집회에서는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 성유보 방송장악·네티즌 탄압저지 범국민행동 상임위원장 등을 강제연행했다. 이들은 인도에 모여있었고 가뜩이나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는 올림픽 축구 예선을 응원하고 있던 참이었다.

   
  ▲ KBS 사옥을 원천봉쇄한 경찰. 촛불문화제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격려사를 통해 "현 정권은 검찰, 감사원, 경찰 등 군대만 빼놓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이치열 기자 truth710@  
 
최근 정부가 부쩍 더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촛불국면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 공천비리 의혹과 관련된 여론의 방향을 돌리려는 의도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여론통제와 무력진압이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자신감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촛불이 이대로 사그라들고 방송마저 정부의 통제 아래 복속될 경우 이 정부의 무한독주에 제동을 걸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신공안정국의 폭거와 이에 맞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민사회 진보진영의 대립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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