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간첩 보도가 전반적으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기사화되는가하면 관련 당국의 대응도 갈피를 잡지 못한채 다소 ‘어정쩡’한 느낌이다. 숱한 의구심은 제대로 풀리지 않은채 국민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책임 소재에 대해선 언론과 정부의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정부측은 “작전에까지 차질을 빚을 정도로 언론이 무책임하다”는 입장이다. 각 언론사의 취재 및 보도가 경쟁적으로 과열되면서 취재진이 작전지역에 들어가거나 작전 수행부대를 밀착 취재하는 무모한 특종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비정규전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치 스포츠중계 하듯이 군 작전을 생생하게 전달해 결과적으로 ‘적의 도주’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내놓고 있다.

실제로 전투가 진행중인 일부 지역에선 방송카메라 기자들과 군인들간의 실랑이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일부 사진 기자들은 무장간첩 등을 촬영하겠다며 작전을 수행중인 군인들을 따라 들어갔다가 간첩으로 오인돼 총격을 받기 직전까지 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20일에는 취재용 차량 30여대가 작전지역에 들어갔다가 군에 떠밀려 다시 밖으로 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현재 강릉지역에서 간첩 소탕 작전을 진행중인 현지 군 작전사령부는 지난 19일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보도통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23일 각 언론사 사장 앞으로 ‘무장 공비 취재및 보도관련 협조 요청문’을 발송하고 ‘언론 관리’에 부심하고 있다. 이 공문은 외형적으로는 ‘협조문’을 표방하고 있지만 속 내용은 ‘항의’에 가깝다.

특히 지난 21일부터 무장 간첩들과 교전중이던 국군들의 사상이 속출하자 더욱 언론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족들에게 통보도 안된 상태에서 언론이 사망 군인 인적 사항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전반적으로 군의 사기 저하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논리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각 언론사의 오보 사례를 전부 수집하고 있다”면서 “사태가 진정된 후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언론도 허둥지둥

그러나 이같은 정부 당국의 반응을 보는 기자들의 시각은 냉담하다. 군이 우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현지에서 나도는 무성한 소문과 루머에 대한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항변한다. 현재 각 언론은 강릉시청에 마련된 합동보도본부를 메인 프레스센터로 삼아 강릉경찰서 상황실, 국방부, 경찰청을 취재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지 취재중인 기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자체 취재된 정보에 대해 군 당국의 확인이 너무 늦다는 점. 가령 지난 19일 새벽에 발생한 무장 간첩 3명 사살건의 경우 19일 오전 10시 50분까지는 3명 사살에 3명 생포했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돼 일부 방송이 이를 곧바로 보도했다가 다시 3명 사살에 1명 생포로 정정하는 해프닝을 벌였으나 결국 이 마저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군 당국이 3명 사살로 최종 발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석간지는 인쇄 직전 1면 컷과 기사를 수차례 뜯어고치는 소동을 벌였다. 이같은 소동은 비일비재하다.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의 진술 내용 보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군은 이광수가 생포된 18일 진술 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확인을 해주었을 뿐 20일까진 이광수 관련 부분에 대해 함구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각 언론들은 국방부와 기무사 등에 있는 취재원들을 동원해 기밀 내용을 빼내기 위해 ‘총력 취재’에 나섰다. 간첩들의 사살 현장도 19일부터 비공개 방침을 표명했다가 기자들의 항의를 받고 21일 다시 현장을 공개했다.

언론들은 이처럼 관계 당국이 언론을 따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19일을 전후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의구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이 탓인지 군은 이광수의 선무 방송 전문을 공개하고 추가 진술을 확인해주는 등 언론을 대하는 자세에 적지 않은 변화를 보였다. 이밖에도 사살된 간첩들의 사인, 잠수함의 무장 정도와 상태 등도 각 언론사마다 다른 내용이 보도됐다.

무장 간첩들과 교전을 벌인 군인들의 르뽀식 현장 기사도 당사자들의 증언 보다는 해당 군부대 동료부대원들의 간접 증언을 토대로 작성되고 있다.

강릉에서 현지 상황을 취재중인 한 기자는 “경찰 라인에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요청할 경우 최소한 1시간, 심지어 반나절 이상 걸리고 있다”며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일부 방송사는 총소리만 나도 ‘교전중’이라는 자막을 내 보낼 정도로 군 당국과 ‘의사소통’이 안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같은 군 당국의 늑장 확인은 군, 안기부, 기무사 등의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대국민용 발표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특수 상황에서 비롯되고 있다. 위기관리 상황에서 언론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원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대목이다.

한 석간신문의 사건 데스크는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관련당국의 신중한 언론대응을 탓할수만은 없지만 독자들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사안에 대해선 이를 해소 할만한 ‘거리’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양만 앞세운 단순보도”

언론보도가 차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강대 최창섭교수(언론학)는 “사실상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언론이 개별적인 취재 보다는 풀(POOL)단을 구성해 취재를 벌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확인은 공동으로 하되 그 사실에 기초해 시각은 달리가는 보도 방식이 보다 성숙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전체적인 가닥을 제시하기 보단 일회적인 사실만을 단순 나열하는 한국언론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이번 사건 보도에서 다시 등장했다는 지적이다. 언론연구원의 이종수 연구위원은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사안을 도외시한채 양적 보도에만 집착하는 현상이 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며 차분하고 신중한 언론보도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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