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판촉살인 사건을 계기로 ‘신문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판촉경쟁에 나선데 대한 자숙 분위기는 잠깐, 중앙일보를 겨냥한 재벌언론 해체론과 이에 대한 방어로 그 양상이 바뀌었다. 재벌언론의 폐해를 명분으로 삼고 있는 이 전쟁은 명분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 저의 때문에 또 하나의 추악한 전쟁일 뿐이라는 혹평을 사고 있기도 하다. 신문전쟁의 배경과 양상,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신문업계의 자율 정화능력이 문제다.”
이번 신문전쟁을 지켜보는 기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진행되는 싸움의 양태는 신문사들이 이번 사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질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경쟁사 죽이기라는 또 다른 자사이기주의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문업계가 내놓은 대책은 신문협회의 ‘판매 공동감시 기구’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 결정에 참여한 각 사 판매국 책임자조차 그 실효성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이다. 한 중앙지 판매국 관계자는 “여론에 떠밀려서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신문사간의 공방이 격화되던 중에도 각 신문사는 여전히 무가지 강제투입 및 버너, 뻐꾸기 시계, 상품권 등을 돌리고 있음이 본지 취재진에 의해 확인됐다.

더욱 큰 문제는 형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재벌은 재벌언론사에, 재벌 언론사는 언론재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것이다.
언론사 차원의 자정 노력 역시 전무한 상태다.

어떤 언론사도 돈을 앞세운 과당경쟁을 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각 신문사 편집국 기자나 판매국 직원들은 이와 관련해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이들 신문사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고작 상대 언론사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비리를 수집하라는 것 뿐이다.

동아, 조선, 한국이 똑같은 재벌언론사인 경향, 문화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중앙만 집중 공격하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위협적인 적’의 손발을 묶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신문업계 전체의 정화는 머리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중앙 역시 삼성과의 분리 등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면 차별화를 통한 질의 경쟁보다는 자본력을 앞세운 물량 위주의 후진적 경쟁에 있다. 누가 먼저 그것을 촉발했느냐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때는 한국일보의 월요판 발행이 그것을 격화시켰고, 또 어느때는 동아일보 조간화가, 어느때는 중앙일보의 48면 발행이 도화선이 됐다. 이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모든 신문사의 ‘공동책임’임을 말해준다.

최근 삼성그룹의 막강한 자본을 토대로 한 중앙일보의 공세에 고전했던 조선, 동아, 한국은 이번 사태를 중앙의 ‘돈줄’을 묶기 위한 호기로 판단하고 있다. 그것이 중앙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쟁관계였던 이들 언론사가 ‘지면을 통한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중앙의 위성방송 진출 등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다. 특히 최근 일부 대기업이 언론진출을 노리고 있는데 대한 위기의식도 깔려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회적 공기인 신문지면이 언론사 이윤추구의 도구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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