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씨 ‘논제구축 연구’ 석사학위논문

언론이 주요 이슈에 대해 독자적으로 논제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사실은 경향신문 편집부 최효찬 기자가 논제설정의 확장 개념인 ‘논제구축(agenda-building) 과정’ 개념을 도입해 워터게이트 사건과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 보도를 비교분석한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한국신문의 논제구축에 관한 연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언론은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독자적으로 논제를 설정하고 추적취재보도로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논제구축 과정에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요사건일수록 정보의 대부분을 국가기관에 의존해 정부가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면 이전까지 중요했던 이슈에서 쉽게 멀어지는 보도태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10월 19일부터 12월 22일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3개 신문사의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 보도를 분석한 결과 이 당시 비자금 사건 관련 1면 머릿기사의 정보원은 평균 93.9%가 국가기관이었다. 비국가기관을 정보원으로 삼은 경우는 6.1% 에 불과했다.

또 언론은 정부의 5·18 특별법 제정 발표가 보도된 11월25일을 기점으로 비자금 사건에 대한 보도를 급격히 줄였다. 박계동의원의 비자금 폭로가 보도된 95년 10월 19일부터 11월 24일까지 3개 신문에 실린 비자금 사건 기사건수는 평균 25.9건이었다.

반면 5·18 특별법 제정 발표가 난 이후 11월 25일부터 12월 22일까지 비자금 사건 보도건수는 평균 6.5건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비자금 사건에 실마리를 제공한 95년 8월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발언에 대한 추적보도가 이어지지 않았었다. 여론조사 결과 비자금 사건과 함께 대선지원금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가는 상황에서 언론은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현상은 분석대상이 된 신문사들간에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보도 경향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기사내용과 제목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한 신문사들끼리의 편집방향 상관관계지수에 따르면 동아와 중앙이 0.81, 동아와 조선이 0.91, 조선과 중앙은 0.95로 조선과 중앙일보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언론은 서로 비슷한 목소리로 국가기관의 발표에 의존함으로써 정부의 논제설정에 충실하게 따라간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도 김영삼 대통령이 ‘노씨 개인비리’로 규정한 것이 특별한 반대여론 없이 적용된 것이다.

이는 최기자가 성공적인 논제구축 과정 사례로 든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도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뉴욕타임스 등 유력지들도 회의를 보이는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한달후 전담취재반을 구성, 1년여에 걸친 추적보도를 통해 여론을 선도하고 CBS가 특집 방송을 하는등 다른 언론매체들도 보도에 뛰어들도록 이끌었다.

닉슨 정부의 협박과 탄압 아래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심각성 인지도를 26%에서 49%로 올려놓은 워싱턴포스트지의 끈기는 언론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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