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끌어왔던 외환은행 불법매각 논란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그동안 논란의 초점이 2003년 9월 당시 외환은행이 과연 경영권을 매각해야 할 만큼 부실한 은행이었느냐는 부분에 맞춰져 왔다면 론스타펀드가 애초에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고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가 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매각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논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금감위는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규정에 따라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주식 초과보유를 승인했다. 결국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이었거나 부실금융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상황이었느냐가 그동안 논란의 핵심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도 이 부분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 연합뉴스  
 
그러나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 김준환 사무처장이 최근 출간한 ‘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다’에서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산업자본이란 동일인 중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전체 자본총액의 25% 이상이거나, 또는 동일인 중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2조 원을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은행법은 금산분리의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만약 론스타가 2003년 9월 기준으로 산업자본이었다면 애초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경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원인무효가 된다. 그동안 금감위의 주장과 달리 이 경우는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규정과도 무관하다. 설령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이었다고 하더라도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넘길 수 있는 법적근거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사실은 경제개혁연대가 지난해 5월 금감위에 요청해 받은 유권해석에서도 확인된다. 금감위는 경제개혁연대에 보낸 공문에서 “비금융주력자의 경우 은행법 15조 3항의 소유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감위는 또 “비금융주력자는 은행법 시행령 8조 2항 규정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각각 금융기관의 주식 보유한도와 그 예외조건을 규정한 조항이다.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의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거나 4% 초과지분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된다. 산업자본이 아닐 경우에는 10%까지 보유할 수 있고 예외조항에 따라 초과보유와 의결권 행사도 가능하지만 산업자본은 이에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데 금감위는 이 예외조항을 적용,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지분 51.02% 인수를 승인했다. 결국 핵심 쟁점은 과연 그 당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느냐 아니냐로 귀결된다.

은행법에 따르면 특수관계인 가운데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 합계액이 2조 원 이상이면 산업자본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기 위해 금감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환은행의 서류상 대주주인 론스타펀드 4호의 특수관계인 가운데 비금융회사는 4개로 자본총액 비율은 21.26%, 자산총액은 7662억 원이었다. 론스타펀드 4호만 놓고 보면 산업자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론스타펀드 4호의 실질적인 대주주에 대한 조사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론스타는 4호 뿐만 아니라 모두 6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외환은행 불법매각 문제를 끈기있게 추적해 온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는 “금감위는 론스타에서 제출한 서류만 검토하고 정작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와 관련해서는 기초적인 서류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위의 치명적인 실수를 드러내는 증거 자료도 있다. 임종인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론스타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얻기 위해 론스타를 금융회사로 인정하는 방안과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규정을 적용하는 방안 등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론스타는 이 문건을 법률대리인인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재정경제부에 전달했다.

이 문건은 론스타 역시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금감위는 론스타가 제시한 두 번째 방안을 선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분류될 경우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지금이라도 당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금감위의 주식인수 승인을 원인무효로 하고 원상회복을 명령할 수 있다.

물론 론스타는 투자자산 내역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역은 확인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재판결과를 지켜보자면서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는데 정작 아무런 정보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론스타펀드 4호의 비금융회사 자산이 이미 7000억 원을 웃돈다는 걸 감안하면 나머지 5개 펀드를 모두 더하면 2조 원을 훌쩍 넘어설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확실한 것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주목할 부분은 금융위의 애매모호한 태도다. 금융위는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반기마다 한 번씩 실시하도록 돼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결과를 외환은행의 경우 2006년 하반기부터 발표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 금융서비스국 은행과 이해선 과장은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론스타펀드 4호에서 투자지분 관련자료를 보내왔는데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과장은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왜 철저히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론스타의 6개 펀드는 모두 개별적으로 운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론스타 쪽에서 공개도 하지 않을 뿐더러 확인하려고 해도 확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만약 이들 펀드들이 개별적이지 않고 상호출자가 있어서 론스타가 산업자본인 것으로 뒤늦게 판명된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외환은행 불법매각 사건과 관련해 현재 5개의 재판이 한꺼번에 진행 중이다. 그러나 김준환 처장의 지적처럼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만 밝혀지면 재판결과와 무관하게 5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인수 승인은 원인무효가 된다. 이 경우 론스타는 원금에 이자만 받고 물러나야 한다. 물론 금융위도 부실매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금융위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