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사고뭉치다. 한물간 이데올로기의 미망에 사로잡힌 골치덩이거나 이마에 땀한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소비와 사랑놀음에 빠져있는 철부지다.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타난 대학생은 대개 이 두가지 분류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주 KBS 2TV가 방송한 은 대학의 한 상징처럼 된 ‘운동’에 대한 방송사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낸다. 무용을 전공한 한 여대생의 젊음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는 당시 대학이 딛고 서 있던 현실과 시대상황을 애써 무시한다.

운동권인 동아리회장에 대한 연정으로 운동권에 입문하게 된 이 여대생은 우여곡절 끝에 무용학원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결국 그녀의 제자리 찾기는 운동권에서 몸을 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녀의 운동권 입문 역시 불의의 시대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지금이 공부할때냐”고 윽박지르는 운동권 학생의 모습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얼마전 방영이 끝난 SBS <남자대탐험>은 대학생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조롱의 냄새마저 풍긴다. 여성편력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구하려다 갑자기 운동권이 되고 수배를 당하는 상황은 이 프로가 만화적인 기법과 코믹터치의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얼마전 한총련 보도에서 나타난 ‘공안적’ 시각의 뉴스및 보도특집 등과 맞물려 대학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 운동권을 낳은 시대상황을 제거하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지극히 우연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으로 대체해 놓음으로써 현실에 대한 대학생들의 고민과 모색을 ‘별것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학생 참여 프로그램인 KBS <코미디 일번지>나 SBS <퀴즈미팅>은 대학생들의 관심이 온통 ‘짝짓기’에 쏠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들 프로는 전문대생들의 단체미팅(코미디 일번지)과 간단한 문제를 맞춘 남학생이 여성 파트너를 선택해 해외여행 티켓을 따내기 위해 퀴즈를 벌이는 형태(퀴즈미팅)로 이루어져 있다. 드라마에 간간이 등장하는 대학생 역할도 대개 공부보다는 사랑타령에 빠진 철부지들이 대부분이다. MBC <자반고등어>나 얼마전 방영된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온 대학생은 연예와 돈 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KBS <열린음악회>나 MBC <청소년 음악회> 등 대학가 공연을 주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의 경우도 대학가 공연때 대학의 독특한 문화와 결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대학생들은 동원이 쉬운 소도구이며, 대학 캠퍼스는 사람이 많이 앉을 수 있는 그저 널찍한 공간일 뿐이다.

대학생을 ‘사회적 골치덩이’와 ‘철부지’로만 규정하는 방송의 극단적 이분법은 대학의 이미지를 일그러뜨리고 있다. 여기엔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방송사의 냉소적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 외에도 사회성 짙은 문제를 출제, 호평을 받았던 <퀴즈 아카데미>류의 프로가 없어진 자리에 ‘짝짓기’ 프로그램을 끼워넣은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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