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겠나. 마음같아선 산골에나 처박혀 살고 싶다.”

10일 감원대상자로 통보받은 한국일보 모 편집위원의 심정이다. 이 관계자의 올해 나이는 48세. 군대를 다녀온 후 대입을 준비중인 장남과 고3 막내 아들이 눈에 어른 거린다. 이 관계자는 “회사에 할말은 많이 있지만 주절주절 얘기하고 싶진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명예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언론사를 떠난 사람들은 할일이 없다. 기자직이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전직이 쉽지 않은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과학 등 지극히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면, 불러주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도 기자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편집국에 남아 있는 선후배, 동료 들이 발벗고 나서 다른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다른 매체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동아일보에서 명예퇴직한 사람들 가운데 20여명이 다른 신문사로 입사하거나 관변 단체를 뚫고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 공무, 판매, 광고 등 비편집국 부서는 그야말로 자영업 아니면 다른 탈출구가 없다. 평생을 한 분야에 몸 담아 왔지만 도무지 써 먹을 곳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70-80년대만 해도 권력의 주변부나 정 안되면 기업체 홍보실에 적을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변인이나 기획관 등 과거 언론인들의 관직 입문 통로도 직업 공무원들로 채워지고 있는데다 기업체 홍보실도 홍보전문가를 원하지,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전직 언론인 출신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 추세이다. 한 대기업체 관계자는 “전직 기자들의 경우 자의식이 강한데다 직업 자체가 전문성에 의존하기 보단 ‘근성’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아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논설위원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한 인사는 “그래도 우리세대는 나은 편이다. 후배들은 더욱 큰 문제다. 평생을 기자로 끝마칠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앞으로 그런 사람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언론사 차원이나 혹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전직 언론인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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