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신문은 ‘당시대의 거울’로 지칭된다. 이는 신문이 나날의 기록자이자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 우리 언론은 일제의 탄압에 굴복, 친일보도를 서슴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비단 기사 뿐만이 아니라 광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우리 언론사에서 단 한번도 지적되지 않은 일제하 친일광고의 실태를 구체적인 사료와 자료를 통해 살펴본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 당국은 개전 5일만인 7월 12일 당시 경성(서울)에서 발행되던 주요 신문사의 대표들을 초청, 보도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다음날에는 미나미총독이 다시 이들을 불러 협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도 안돼 국내 신문들은 민족지, 친일지 가릴 것 없이 본격적으로 친일보도를 시작했다. 일본군을 ‘아군’ ‘황군’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1면과 사회면 머릿기사는 거의 전쟁기사와 일제의 정책홍보 기사로 채워졌다.

이같은 보도경향은 동아, 조선은 40년 8월 폐간 때까지, 그리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일본 패전 때까지 계속됐다. 우리 언론사에서 이 시기는 ‘민족지의 변절기’로 규정되고 있다.

그동안 일제하 신문의 ‘친일성’은 주로 지면의 상반부인 기사에만 국한돼왔다. 이는 친일보도의 실체가 기사내용인 점만을 강조한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의 전체 지면을 놓고 보면 하반부인 광고부문에서도 친일 기사에 못지 않는 ‘친일광고’가 무수히 많이 게재돼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친일광고’란 ‘광고 본래의 목적인 상품선전 대신 일제의 침략정책을 홍보한 정치성 광고’를 지칭한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같은 친일광고는 친일기사와 마찬가지로 중일전쟁 이후부터 지면에 등장하여 일제 패망때까지 일제 당국의 나팔수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말기 국내 신문에 게재된 친일광고는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친일광고는 몇몇 특정기업들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즉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일지라도 친일광고를 단 한번도 게재하지 않은 기업도 있다. 따라서 친일광고는 전적으로 기업주의 친일성향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의약품-술-비누-치약-과자류등 생필품 광고에서 친일광고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전시하 군수품으로의 판촉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셋째, 대다수의 친일광고는 징병제나 근로동원, 절약등 일제의 정책 홍보를 앞세우면서 은연중에 상품광고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시대상황에 맞추어 광고문안을 바꾸는등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친일광고는 일시적인 유행물이었다기 보다는 특정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제의 침략정책에 발맞추어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작위적인 친일행위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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