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가위질, 점잖게 말한다면 사전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싸고 이 땅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반응은 갖가지다.

나라밖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어떤 영화감독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고 토로한다. 그 표정도 사뭇 충격의 빛으로 얼룩진다. 이미 50년에 가까운 저 과거의 시간에 명문으로 선언된 헌법조항의 뒤늦은 현실화가 왜 그토록 충격이 되는가.

그 까닭, 그 충정은 넉넉히 짐작할만하다. 그동안 외설이나 폭력은 물론 ‘정권안보’ 따위의 기준 아닌 기준들이 얼마나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린했던가. 그 서슬에 가위 눌려왔던 창작인으로서는 이제야 한꺼번에 먹구름이 걷히는 풍경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을 터이다.

비단 그들 창작인만이 아니다. 무릇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표현의 자유 그것만을 짓누르는 것으
로 그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필경 생각하는 자유마저 억압하고 만다. 이젠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김수영 시인의 외침 그대로 모든 창조적인 생각, 모든 상상력이 ‘불온’으로 몰려 책상서랍속에 감금된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말하기 이전에 그 현실적 폐해는 이루 다 헤아리기에도 어려운 그림자를 낳는다. 개인의 상상력은 쇠퇴하고 따라서 사회의 상상력은 자라나지 못한다. 바로 그 결과가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이다.

‘세계화’니 ‘무한경쟁’ 따위의 구호들을 무턱대고 떠받드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적 상상력의 쇠퇴는 그 구호들을 위해서도 치명적이다. 이른바 정보화사회에서, 무엇을 가지고 ‘세계화’의 실명이라고 할만한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무한경쟁’을 벌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신선한 충격’을 드러내는 어떤 영화감독의 반응보다는 애당초 검열의 위헌성을 제기했던 어떤 영화평론가의 반응이 더욱 적절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의 반응은 한마디로 ‘만시지탄’쯤으로 간추려질만 하다.

그렇다. 사실 헌재의 결정은 50년 저쪽의 시간에 마련된 헌법 조문의 새삼스러운 낭독에 불과하다.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법문을 결정으로 되뇌었을 뿐이다. 그 ‘지당’함에 충격을 받을 나위도 없는 당연하고 또한 당연한 일이다.

정작 충격적인 풍경은 또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반응으로 말미암아 빚어진다. 집권 여당을 비롯한 권력쪽의 사람들, 그리고 일견 겉모양이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들의 합창은 한마디로 ‘시기상조’쯤으로 간추려질만 하다. ‘시기상조’라니, 무엇이 시기상조라는 것인가.

물론 그들의 속내에 잠겨있을 한가닥 충정마저 헤아리지 못하는바는 아니다. 몇십년동안에 걸친 규제를 하루아침에 풀고 나면,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기생하는 외설과 폭력의 상업주의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충정의 물음이다.

그러나 그 물음은 이제부터 풀어가야 할 과제일뿐,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을 탓하고, 더구나 ‘시기상조’를 들먹일만한 근거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이 직감하는 ‘시기상조’는 헌법의 현실화를 지체해온 결과이다. 진즉 헌법의 명령을 따랐더라면 이제와서 등급주의를 들먹이고 자율규제의 틀을 걱정해야 할 턱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충격과 만시지탄과 시기상조의 엇갈림을 보면서 나는 영화의 창조성보다는 이 땅의 사람들이 드러내보이는 이른바 헌법감각에 무거운 생각이 쏠린다. 시기상조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우리의 헌법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기상조라면 우리의 헌법이 시대적 적합성을 갖지 못한다고 인식하는가.

무릇 민주주의란 헌법인식 또는 헌법 감각의 체질화와 함께 자라나게 마련이다. 헌법, 그 가운데서도 권력구조니 뭐니 하는 대목이 아니라, 기본권조항의 정신들이 머리와 가슴속에 녹아 들어야만 민주주의는 피를 부르지 않고도 자라난다. 때문에 여느 경우와는 다른 무게로 ‘감각’이라는 낱말에 헌법에 따라붙는 것이다. 인식과 이해를 넘어 손끝과 발끝에까지 헌법감각이 뻗어나야만 민주의 시민임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화검열의 위헌결정에 반응하는 이 땅의 풍토를 눈여겨보면 아직 헌법감각이란 낱말은 낯선 쪽에 자리하는 것만 같다. 지난날의 어떤 나라처럼 우리 헌법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어린이와 어른들이 두루 좋아하는 만화를 넣어서 말이다.

헌법감각이라곤 도무지 감지되지 않는 이 땅의 한쪽 반응들은 나로 하여금 다시 헌법의 첫머리에 나라의 이름보다 인간의 인간다운 기본권을 앞세운 독일의 헌법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헌법감각의 함수를 거듭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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