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6시 서울지방 경찰청 입구.

국민일보 사회부 김용백기자(36)는 어깨를 한번 움찔해 보인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1층 현관에는 밤샘근무에 지친 듯한 경찰관 2명이 안내석에 앉아 그의 출근 모습을 지켜본다.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멈췄다.

“뚜벅 뚜벅 … 철커덕.” 이날 역시 기자실 문은 김기자가 열었다. 지난 5월말께부터 ‘시경 캡’을 맡은 뒤 기자실 문당번을 도맡다시피해오고 있다.

새로운 거리찾기 불철주야

매일 반복되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우선 조간신문을 펼쳤다. 간밤의 사건사고를 확인하고 뉴스의 무게를 달기 위해서다. 다른 신문사 경찰기자들의 땀과 정열이 신문 지면에서 풍겨온다.

“따르릉, 따르릉 ….” 드디어 시작이다.
“여보세요. 음 그래, 어디냐. 예정사항은….”

오전 6시 20분께 각 경찰서에서 사건 사고 여부를 취재한 경찰기자들이 1차 보고를 시작했다. 모두 9명의 국민일보 경찰 기자들은 새벽 5시30분께부터 담당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따르르릉….”

“뭐 기사가 없어? 너 뭐하는 놈이야. 더 알아봐.” 김기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얘기한 건 어떻게 됐어? 그래. 연락을 다시해 봐.”

김 기자가 경찰기자들에게 전화보고를 받고 있는 사이 몇몇 방송사 기자들도 출근해 자사 경찰기자들의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기자실은 금새 시장통을 방불할 정도로 요란해진다. 여기저기서 전화기 벨소리가 울어대고 몇몇 ‘시경 캡’들의 목소리가 격하다.

국민일보 경찰기자들의 1차 보고가 마무리된 시각은 오전 6시40분께.

한바탕 전화 수화기를 붙잡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김기자가 노트북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경찰기자들의 보고 내용을 기초로 이날의 기사 예정사항을 작성하기 위해서다.

“고려대 총장 탄핵 파문, 경희대 제적 한의대생 가장 많다… 타닥, 타타닥.”

김기자의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빨라진다. 사건팀장에 대한 보고 마감 시각은 오전 6시 50분. 오전 7시에 있을 부장단 회의에 맞춰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인 오전 6시대에 김기자를 비롯한 석간신문 경찰기자들의 일과는 절정에 달한다. 조간신문의 경우 오후 4시를 전후한 때에야 이같은 ‘전쟁’이 시작되지만 석간은 이른 아침이 분주하다. 국민일보의 시내판 기사 최종 마감은 오전 11시.

경찰기자들의 취재와 기사출고에 1차 지휘책임을 맡은 김기자가 경찰기자들의 새벽보고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작성해야할 기사의 중심과 서술 방향,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충 취재 지시 등이 이 짧은 전화 통화를 통해 이뤄진다.

김기자가 기사 예정 사항을 본사로 송고한 직후 한 경찰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뭐라고? … 그럼 오전 9시30분이 돼야 확인 가능하단 말이냐?” 당초 예정 사항으로 보고했던 고려대 충장 탄핵 파문 기사가 늦춰지게 된 것이다. 김기자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사건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예 김용백입니다. 그 기사말이죠 사실확인 관계로… ” 고려대 관련 기사는 하루 연기하기로 했다.

아침 ‘전쟁’은 1차 마감 직후인 오전 10시께 일단락됐다. 그래도 이날은 ‘평온한’ 편이었다. 지난 8월 중순께 있은 연세대 시위 사태나 이번 조선(북한) 무장 간첩단 사건 처럼 대형 사건이 터지면 경찰기자들은 사건 현장에 급파돼 철야 근무를 밥먹듯 해야 했다. 김기자 역시 상황 파악을 위해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김기자가 경찰기자들을 ‘쪼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달 21일에는 무장간첩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급파된 5명의 경찰기자들을 위문하기 위해 사건팀장과 함께 강릉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야간통행금지가 시행중인 강릉 시내를 이잡듯 뒤져 5명의 후배 경찰기자들에게 ‘화끈한’ 뒤풀이를 제공하는 등 경찰기자들의 사기 진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오후도 특이한 돌발 사건이나 기사와 관련된 보고는 없었다. 김기자는 오후 1시20분께부터 각 경찰기자들에게 사건사고 유무를 확인 보고토록 했으나 별다른 사항이 없었다. 당초 이날 오전 마감 시간에 출고하려다 지연된 고려대 총장 탄핵 파문 기사가 오후 2시께 관계자를 만나 최종 확인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건기자들과 끈끈한 인간관계 유지

이날 오후 강남구 삼성동의 종합무역전시회장(KOEX)에서 취업전문회사인 리쿠르트사가 주관하는 취업박람회가 있다는 것을 보고하지 않은 담당 기자를 오후 4시께 호출해 한바탕 꾸짖은 뒤 사진 신청과 스케치 기사 작성을 지시하는 정도였다.

김기자는 경찰기자들에게 기획 기사 아이템을 만들어 이날 저녁회의에서 보고토록 지시하고 오후 5시20분께는 서울 경찰청 공보관을 만나 최근 무장간첩 출현 이후 경찰청 근무 상황과 내부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곧장 회사행.

이날 저녁 6시45분에 시작한 사회부 회의는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사검팀장이 별도로 경찰기자들을 모아놓고 최근 기사 작성과 관련된 몇가지 지적 사항을 내놓았던 것이다. 경찰기자들의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 듯했다. 회의실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김기자는 별다른 지적 사항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출입처를 돌아다닐 때 뭐라도 항상 메모해 놓은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기발한 기획안도 나올 수 있다”고 한마디했다.

사건팀장이 자리를 뜬 뒤에도 경찰팀 회의는 계속됐다. 몇몇 경찰기자들이 준비해 온 기획 아이템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좋아, 그럼 그 사안을 다음주 월요일 기획 취재 아이템으로 정하기로 한다. 각자는 오늘 회의 내용을 숙지하고 책임 맡은 부분에 대해 정확히 취재할 수 있도록 해.” 김기자의 취재 지시를 끝으로 회의를 마친 시각은 저녁 8시20분.

회사 현관문을 나서면서 후배기자들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한잔해야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편집국의 심장으로 통하는 사건기자들의 발걸음은 또 다시 ‘주점행’. 하루의 무용담이 오간다.

김기자는 하루전인 3일밤에도 무장간첩 현장 취재를 위해 강릉에 파견 갔다 돌아온 후배 기자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이 탓일까.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그러나 후배들과의 술자리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폭탄주에 곁들인 후배기자의 걸죽한 육담에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고 고참 경찰기자의 애정어린 충고에 일순간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렇듯 일희일비의 고개를 넘나들며 사건기자들의 밤은 깊어만 갔다.

이날 술자리는 새벽 1시 30분께 끝났다. 술에 젖은 채 새벽 퇴근길에 선 김기자의 등뒤로 인간세상의 ‘야사’가 잔뜩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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