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 넘게 무장간첩 수색이 진행되면서 군 당국과 한때 마찰을 빚기도 했던 강릉 현지 취재진은 수색이 장기화되고 사실상 군 작전이 완료됨에 따라 취재열기가 급속히 수구러들었다. 언론과 잦은 마찰을 빚어왔던 군 당국은 불규칙적이던 브리핑을 지난 3일부터 정례화하는 등 뒤늦게나마 언론과의 관계 회복에 신경을 기울이기도 했다.

취재지침 없어 시행착오

○…이번 무장간첩 사건 취재에 투입된 각 일간신문, 방송, 통신 기자들은 1백60여명선. 워낙 초유의 사태인데다 사건 초기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취재진 대거 투입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이들은 강릉시청 내에 설치된 군합동보도본부와 강릉 경찰서, 현지 작전 군부대 등을 취재 거점으로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같은 취재진 무더기 투입에 비해 일반 국민들의 의문점을 언론이 해소해주기는 커녕 갖가지 오보로 인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현지 취재진과 보도본부 양측은 무장간첩 보도 과정에서 모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데 공감하는 분위기. 취재진은 부대이동상황에서 군장비 도입, 수색성과 등 세밀한 부분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첩보수준의 추측보도까지 빈발해 군작전과 사기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반면 보도본부측도 기밀을 내세운 필요 이상의 보도통제에 나서 언론의 추측보도를 오히려 조장했다는 원성을 샀다. 따라서 이번 무장간첩 보도는 긴박한 군 작전과 관련한 언론사와 군 당국의 취재 지침 마련이 절실하다는 교훈을 낳았다는 게 중론이다.

합동보도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득 준장은 “기자들의 속보 전쟁이 없었다면 이미 작전이 끝났을 수도 있었다”며 “오보에다 과열 취재 경쟁까지 양산돼 언론중재위 제소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한겨레신문 송현순 기자는 “민간차량은 작전지역 출입을 허용한데 비해 취재차량은 오히려 출입을 막기도 한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언론에 대한 군당국의 대응이 지극히 편의적이었다” 고 지적했다.

국방장관, 언론사장에 항의

○…특히 군 당국은 신문보다 방송에 더욱 강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SNG까지 동원한 방송사들이 총소리만 나도 교전이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등 추측보도가 많았다는 것. 이로인해 보도본부 측은 각 방송사 취재팀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보도 자제를 당부했으나 이 역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2일에는 KBS가 저녁 9시 뉴스를 통해 열추적장치를 탑재한 OH-58 헬기가 두 명의 무장간첩과 한마리의 멧돼지를 포착해 야간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해 상당한 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보도내용은 이미 낮에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본부측이 확인한 내용이었다.

KBS 중계차가 나가있던 왕산면 도마리에서 작전을 수행중이던 한 군인은 “밤에 무슨 총소리, 헬기 소리냐. 장교들의 비표도 화면에 나온 것처럼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찼다”며 “언론이 오보제조기”라고 평가절하하기까지 했다.

이런 보도로 인해 “포착된 무장간첩도 제대로 못잡는 무능한 군대로 인식돼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이 보도가 나간후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직접 KBS 사장실로 항의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진 통제에 항의시위도

○…이같은 합동본부측의 반응에 대해 취재진들은 군 당국이 아마추어적 언론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언론의 특성은 도외시한 채 보도를 막는데만 급급해 그야말로 기사거리가 고갈된데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확인도 뒤늦게 이루어졌고, 그나마 확인 내용도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

단적으로 보도진의 작전지역 출입이 통제되면서 사진기사거리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사진기자들은 몇몇 기자가 찍은 내용을 함께 전송하는 공동취재단을 구성할 정도였다.

또, 공식발표 내용도 사실과 다른 것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함장 사살 지점. 보도본부는 지난 달 28일 유림 부함장 사살 지점을 칠성산 하단 2Km로 발표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확인작업으로 15Km 지점으로 판명났다. 군이 1차 방어선을 넘은 사살지점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취재차량에 대한 지나친 통제도 불만을 샀다. 작전지역 안에서의 취재가 일단 통제되면서 통제구역은 작전지역 밖에서 인근마을 밖까지 밀려나 결국 주민차량은 통과되고 취재차량만 막히는 아리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취재차량들이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연대장은 “왜 오보를 내느냐”며 “나가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5일부터 각 일선사단장들은 “기자들에게 사진찍히면 옷벗을 각오를 하라”며 “기자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군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정훈장교는 “아직도 군상급자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언론을 대하던 관행으로 언론을 지배대상으로 보려는 태도가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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