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지난 6월 삼성전자의 하청업체인 삼성코레노 노조원이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에 부당노동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회사의 이의제기로 해당 카페의 접속이 차단되는 일이 일어났다. 결국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심의해 사이트는 한 달여 만에 다시 열렸고, 정보인권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다음은 사과했다.

사례2. 이달 초 한 언론사 기자는 자신의 코멘트가 포함된 2005년 1월치 다른 언론사 기사를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가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사전 협의조차 없이 삭제당했다. 이 기자는 나중에야 연예기사의 선정성을 비판한 기사에 등장했던 연예인이 조치를 요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례3. 민중의소리·민주노총 등 20개 사회단체와 인터넷신문은 지난 7월 말 정보통신부 장관 명의의 공문을 받았다. ‘불법 북한 선전게시물 삭제를 위한 권고서한’이라는 공문에는 7월27일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44조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었다.

▷거꾸로 가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나도 모르게 내가 쓴 글이 사라지는 일들’, 새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음은 지난 6월의 노조 카페 차단 건과 관련해 결국 사과를 했지만, 이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새 정보통신망법은 사업자에게 더 많은 법적 권한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44조2는 포털로 하여금 외부에서 명예훼손을 이유로 삭제를 요구할 때 지체없이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하고, 권리 침해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 당사자간 다툼이 예상될 때도 접근을 임시로 차단하도록 했다. 더욱이 이런 조치를 취할 경우 배상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게 했다. 이는 명예훼손으로 문제제기된 글에 대해 ‘지체없이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는 개정 전 조항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사례3에 드러나듯, 정통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단한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정통부 장관이 삭제 명령을 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사업자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는 내용(44조7)이 신설됐다.

▷국가 아닌 사업자 통한 규제= 정보통신망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이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가 국가의 공식 절차 없이 민간사업자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인 만큼 과잉규제와 명확성·최소성의 원칙에 의거해 불법행위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 법안은 정통윤의 ‘사법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업자들에게 직접 책임을 지우고 있다. 장씨는 “문제가 있다면 당사자가 법적 책임을 지면 되는데, 규제에 어려움을 느낀 정부가 포털에 책임을 넘겨 규제를 유도하면서 이용자에 대한 과잉규제가 일어나게 됐다”고 우려했다.

김기중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는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은 경우 고의·과실이 있다고 판단될 때만 법적 책임을 지는데, 사업자를 통한 간접규제가 이뤄질 경우 정부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되는 등 피해 구제 절차와 방법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 커= 정통부가 포털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새로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부가 7월 말 추진 중이라고 밝힌 개정안은 ‘포털은 불법정보가 유통되고 있음을 안 경우 이를 차단해야하고, 불법정보 유통을 차단하는 인력과 조직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 한창민 사무국장은 “불법정보의 유통차단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라며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모든 불법 정보에 대해 유통 차단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를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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