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힘내십시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대통령 역할을 했던 탤런트 이덕화씨는 지난 6월27일 이명박 후보 문화예술지원단 위촉식에서 이 후보에게 '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은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말은 곧 법이었다. 강력한 통치기반을 구축했지만 '철권통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된 원인이 됐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정부는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길 권장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 '노통'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노무현이'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표현 아닐까.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창길 기자  
 
'전두환 대통령 각하'에서 '노무현이가'까지

탈권위 시대의 의미를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권위마저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 국민의 숨을 죽이게 했던 '권위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바라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탈권위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현재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17대 대통령의 자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한나라당 경선 승리 이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언론의 주요 지면은 연일 이 후보 관련 얘기로 도배가 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신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명박 용비어천가' 부르는 언론

한나라당 대선 후보라는 신분의 위세는 대단했다. 서울 도곡동 땅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 패배 위기까지 몰렸지만 경선 승리 이후 검찰의 움직임이 잠잠한 상황이다.

김형탁 민노당 대변인은 "미리 알아서 엎드리는가. 조변석개하는 검찰의 태도는 국민들의 조롱을 사기에 충분하다"면서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아예 폐기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의 현재 신분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일 뿐이다. 현직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당선자 신분도 아니다. 언론의 지나친 '배려'가 논란을 일으킬 때도 있다. 

문화일보 기자 "유력정당 대통령 후보와 방북 협의해야" 

문화일보 이미숙 기자는 지난 21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시 당선자와 협의를 해서 정책 계승의 문제라든가 방북 문제를 협의를 했었다"면서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라고 하면 (청와대가 그 후보와) 최소한의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여유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 예를 들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인가"라며 "한 정당의 후보가 된 분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국민의 의사를 듣는 것이거나 민주적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이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대선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고 민심의 평가는 냉정하기 마련이다. 대통령 자리에 근접한 것과 대통령 당선자가 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 후보 "공직생활 하면서 나온 (의혹) 한 건도 없다"

이 후보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철저히 해명하고 진솔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공작' 돌림노래를 하다보면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질 뿐이다. 이 후보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 후보는 지난 21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이번에 제기된 의혹들은 제가 30∼40년 전 직장인으로 있을 때, 민간인으로 있을 때의 일들이다. 제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왔던 것은 어느 한 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럴까. KBS <뉴스9>는 21일 <국제금융센터, AIG는 계약 때부터 매각 계획>이라는 뉴스를 통해 미국의 금융그룹 AIG와 서울시가 맺은 계약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KBS, 이 후보 서울시장 재직시절 의혹 제기

KBS 박태서 기자는 뉴스에서 "이 전 시장의 대선 출마와 이 사업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혹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이 전 시장 측은 이 전 시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사업을 서두르거나 기공식을 앞당기라고 지시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 ⓒKBS 뉴스9  
 
AIG 계약 의혹은 이 후보가 현직 서울시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KBS는 이 전 시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이 계약을 서둘러 진행했고 치적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AIG 논란은 새로운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AIG 논란은 이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 중 일부이다. 이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이 나와  본선에서 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지만 저는 더 나올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의혹 말끔히 해소됐나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 후보의 생각일 뿐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는 "이명박 후보는 지금 마치 대통령 당선자처럼 행세하며 마치 본선을 이긴 것 같은 오만과 착각 속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는 법이다. 박근혜 선거캠프의 '불안한 후보' 주장에 대해서도 실제 불안한 후보인지 전혀 사실 무근인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그러한 검증은 누가 해야 하는 것일까. 한나라당이 장담했던 당 검증위원회의 검증결과는 한 마디로 기대 이하였다. 대선 본선에서 후보 검증의 핵심주체는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각종 의혹에 자신이 있다면 언론검증에 더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대선후보 검증의 제1 주체는 언론

그러나 이 후보의 초기 대응을 보면 우려를 넘어 불안을 느끼게 한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당선됐던 지난 20일 오후 한겨레를 상대로 5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후보는 소장을 통해 "한겨레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경준씨의 인터뷰 내용을 검증 없이 보도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 한겨레 8월17일자 1면.  
 
앞서 이 후보의 처남인 김재정씨는 경향신문 등을 상대로 15억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 후보 의혹 검증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언론이다. 이 후보에게 50억 원이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는 모르지만 적지 않은 언론에게는 회사 존폐를 위협할 만한 액수이다.

이번 소송으로 언론의 대선후보 검증노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 시절 얘기를 해보자. 요즘 세상을 쥐락 펴락 하는 언론들도 5공 시절에는 전두환 대통령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수십억 원의 '돈'으로 언론에 으름장을 놓는 모습에서 '각하시대' 부활을 우려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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