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500점 만점에 497점을 받은 한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전과목에서 하나만 틀린 이 수재를 서울대가 거부해서 다른 대학으로 갔다며 학부모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자립형 사립고에 다닌 이 학생의 내신성적이 당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고교등급제가 사라진 대학입시에서 2007년 특목고, 자사고 출신들은 수능고득점에도 내신성적 때문에 큰 불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서울의 유명대학들이 이처럼 1∼2점 근소한 차이로 고르고 골라서 뽑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얼마나 충실하게 시키느냐는 점이다. 왜 학생들은 어렵게 한국의 유명대학을 들어갔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고 해외로 가느냐는 점에 대해 언론은 심층분석이 없다.

한국과학재단의 ‘올림피아드 수상자 현황’에 따르면, 2006년까지 대학에 진학한 역대 수상자 250명 가운데 학부 재학생은 113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해외대학 이공계 재학생은 39명(34.5%)으로 국내대학 이공계 재학생 35명(31%)을 앞질렀다고 한다. 해외대학 재학생은 대부분 서울대를 중퇴하고 미국 유명대학으로 떠난 학생들이며 이런 학생들은 1994~2001년까지 8년 동안 5명에 불과했지만, 2002년부터 급증해 작년 한해만 11명이었다고 전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하는 최근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7년 1월 한 중앙언론사 신입기자 교육시간이었다. 어려운 언론사 고시를 뚫고 어엿한 기자가 된 10명의 수습기자 프로필을 보고 특이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서울의 유명대학 중심으로 뽑힌 이 학생들중 신문방송학과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과, 정치학과, 영문학과 등은 눈에 띄었으나 전공을 살려 기자가 된 학생은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학4년 동안 전문성을 높여줄 학과공부와는 별개로 대학에서 고시, 입시준비로 따로 논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가리고 가려 뽑는데 힘을 쏟고 학생들의 요구나 기업체 기대수준에 맞는 교육을 못시키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적성보다 수능성적에 맞춘 대학지원을 우선시한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대학, 전공이 이처럼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교수들의 임용과정에서 그 문제의 시작과 근원을 본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서울대 황우석 교수 사건과 고려대 이필상 총장 사건이다.

황우석 사건의 경우 전반적인 조작과 사기행각에 대해 동료교수들의 협조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동료교수들이란 주로 대학선후배로 구성된다. 그런 곳에 견제, 감시, 학문적 양심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머리좋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 유리하고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린다. 학생 지도는 너무 많은 프로젝트 수행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워낙 똑똑한 아이들이라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그래서 전공을 바꾸고 ‘시험도사들’은 이 시험 저 시험 도전해서 전공과 무관하게 골라간다.
고려대학교 이필상 총장의 논문표절 시비는 ‘칭병 입원하라’고 했다는 총장 쪽 주장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논문 표절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던 교수의회가 ‘표절확인했다’고 발표하고나서 불과 며칠 사이 ‘(논문표절)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면 정치꾼 수준이지 학자들 모임이라고 볼 수 없다.

논문 표절 여부를 위해 구성된 특별집단이 조사후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고려대학교 교수들 스스로 정의와 원칙,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로 보인다. 이런 집단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학생들이 유명대학교를 진학하는 것은 한국에서 행세할 수 있는 학벌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그곳에서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질높은 교육이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추가경비를 부담해야 할 학부형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의 일류대학교가 이에 걸맞는 교육내용과 교육자들로 구성되지 못하고 운영에서조차 형편없는 정치꾼 행태를 보인다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세계 일류대학 100위권 목표만 화려하고 그 내용은 구습을 타파하지 못할 때 학생들의 해외탈출 러시는 막을 수 없기때문이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이런 현실에서 교수들부터 먼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선후배 동문 교수들로 채우려는 잘못된 관행부터 고치지않는 한 한국에서 학문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 석학이라며 사대주의 근성으로 해외 유명교수들 초빙하는 것으로는 일류가 될 수 없다. 정의와 원칙, 양심이 사라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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