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나라당 18번에서 이제 20번째 성범죄(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 '남근당으로 당명을 교체하라(민주노동당 김성희 부대변인)', '막을 수 없는 한나라당의 사필귀색(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 '한나라당은 음란소굴이다(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대변인(부대변인)들이 4일과 5일 발표한 논평 제목이다. 정치권이 '음담패설' 문제로 시끄럽다. 낯뜨거운 제목의 논평을 발표한 여야 정당 대변인들을 비판하기에는 원인 제공자의 행위가 상식의 수준을 넘어섰다. 정치권을 '음담패설' 논란의 현장으로 만든 장본인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이다.

   
  ▲ 서울신문 2007년 1월5일자 6면.  
 
강재섭 대표는 4일 한나라당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정도를 넘어선 성적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강재섭 대표의 발언은 농담 수준을 넘어서 성희롱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내용이었다.

강재섭 성희롱 발언 논란, 정치권 파장

   
  ▲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이창길 기자  
 
강재섭 대표의 발언 일부를 보자. "요즘 조철봉(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이 왜 그렇게 섹스를 안해?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더만." "너무 안하면 흐물흐물 낙지 같아져. 오늘은 할까, 내일은 할까 해서 ('강안남자'를) 계속 봐도 절대 안 하더라."

강재섭 대표는 이러한 발언을 같은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에게 했고 발언 내용이 4일 오후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문은 확산됐다.

강재섭 대표나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성희롱' 의도는 없었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성 문제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것도 특정 정당과 관련된 인물이 연이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면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2월24일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동아일보 기자 성추행 사건이 있었을 때 파장은 대단했다.

한나라당 최연희 사건으로 궁지 몰려…박근혜 "정치인 말과 행동 모범돼야"

최연희 의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소속 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궁지에 몰렸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건 발생 3일 만인 2월27일 "당 대표로서 국민께 깊이 사과 드린다"며 "정치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말과 행동이 남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최연희 의원은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냈다. 탈당의 변을 통해 "이번 사태로 국민과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무릎 꿇고 사죄 드린다"고 밝혔다. 다음날 박근혜 대표는 여성단체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성희롱 예방교육을) 앞으로 실시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최연희 의원은 언론을 피해 잠적했다.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며 들끓었던 여론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한나라당 이재오 당시 원내대표는 3월17일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최연희 의원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취해야 할 일련의 조치는 모두 취했다"며 "앞으로 또 다시 그 문제를 (당 차원에서) 거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퇴여론 들끓었던 최연희…2007년 1월 현재 의원직 유지

   
  ▲ 최연희 의원. ⓒ연합뉴스  
 
한나라당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했고 원내대표는 당 차원에서 취해야 할 조치는 다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잠적했던 최연희 의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월20일이었다.

최연희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국민들과 동아일보, 피해 기자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과문 어디에도 '성추행'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기자들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최연희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7년 오늘 현재 그는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폭풍처럼 일었던 비판여론도 잠잠해 졌고 최연희 성추행 사건은 과거의 일로 묻혀졌다.

한나라 당원협의회장 성폭행 혐의로 구속

이후에도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관련된 크고 작은 성 관련 사건들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필요한 경우 사과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사건은 계속됐다.

한나라당 소속 충남 당진군 당원협의회장 정모씨의 성폭행 미수사건이 벌어졌다. 정씨는 지난해 12월15일 새벽 1시30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20대 여성을 성폭행 하려 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12월18일 정씨를 제명하기로 했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국민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다시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사죄의미로 대국민 봉사활동?

   
  ▲ 한겨레 2006년 12월21일자 3면.  
 
이번에는 사죄만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반성과 사죄의 의미에서 16개 시·도 당을 중심으로 대국민 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재섭 대표도 경남 창녕과 광주에서 양파도 까고 연탄도 날랐다. 12월21일 한겨레는 <사고 치고 봉사활동 요즘 한나라당 공식>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은 반복됐다. 2007년 1월4일 이번에는 당 대표가 사고(?)를 쳤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 여론은 들끓었다. 네이버의 관련 기사에는 1000개가 넘는 리플이 달렸다. 한나라당을 '성(性)나라당'으로 부르는 등 기사로 전하기 어려운 낯뜨거운 표현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은 다시 사과를 했다. 당 대표가 아닌 대변인이 대신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5일 "경위를 불문하고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물의를 빚은 데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강재섭 대표의 얘기를 전했다.

강재섭 "물의 빚어 깊은 유감"…민노당 "거짓사과로 국민 기만 말라"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성명 일부를 보자. "이제 국민들은 한나라당하면 성 추행당이라고 뚜렷이 기억한다…한나라당은 더 이상 거짓사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강재섭 대표의 유감 표명은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말뿐인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박근혜 대표는 최연희 의원 사건 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했고 "정치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말과 행동이 남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실천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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