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리드(John Reed, 1887~1920)  
 
존 리드(John Reed, 1887~1920). 그는 ‘인류가 시도한 가장 경이로운 모험’이라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도하고 불세출의 르포르타주(reportage) <세계를 뒤흔든 열흘(Ten Days That Shook the World)>(1919)을 쓴 미국의 급진적 저널리스트다.

어떤 이는 리드를 두고 ‘행복한 언론인’이라 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격변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인들이 한번쯤 가슴 속에 품어보는 꿈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을 뜻하는 제목의 이 영화는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존 리드의 불꽃같은 생애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존 리드와 동시대를 살았던 생존 인물들의 증언으로 시작해, 그가 멕시코의 어느 초원에서 헐레벌떡 마차에 올라타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실제로 존 리드가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14년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지에 멕시코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혁명가 판초 비야(Pancho Villa, 1878~1923)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부터다.

영화는 바로 이 시기, 즉 존 리드가 혁명을 옹호하는 사회주의자가 된 직후부터 러시아의 어느 병원에서 33살의 젊은 나이에 객사(客死)하는 순간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3시간 14분에 이르는 장대한 드라마에 담았다. 존 리드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다뤄진 가장 앞선 세대의 언론인으로 남아 있다.

중립은 깨어져야 할 하나의 신화에 불과

   
  ▲ 영화 '레즈'의 한 장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서문에서 존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투쟁의 과정에서 내 감정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요한 날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사건들을 보려 했고, 또한 진실만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영화 속에 그려진 존 리드는 이렇듯 언론인과 정치인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혁명 이후, 그 순수한 정신이 퇴색되어 가는 상황을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는 존 리드의 모습에서 그 ‘경계인’의 회한과 고뇌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리드는 말한다.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우리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요.” 존 리드가 가슴에 품었던 진정한 혁명의 꿈은 그래서 그가 33년의 짧은 생애를 뒤로한 채 쓸쓸하게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짙은 여운을 남긴다.

한 언론인이 모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수 있는가.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존 리드의 삶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자신의 저서 <오만한 제국>에 이렇게 쓰고 있다.

   
  ▲ 영화 '레즈'의 포스터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중립은 깨어져야 할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립을 자처하는 것은 기만일 수 있다. 손석춘이 “실제로는 자본가를 편들면서 중립을 가장하는 오늘의 언론인들과 대조적이다”라고 존 리드를 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부는 장밋빛 희망과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그걸 받아 적는다. 정권 때리기에 앞장 서는 보수언론들까지도 FTA에 대해서는 ‘찬성’을 합창하고 있다. ‘다른’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FTA의 ‘그늘’을 말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정부가 잘 알아서 하겠다”는 말로 모든 논쟁을 무력화시키고 회피한다. 공청회 한 번 변변히 열리지 못했다. 국민의 73%가 정부의 사전 준비를 불신하고, 10명 중 9명이 협상 속도를 늦추라고 했다. ‘진실’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존 리드는 ‘중립’을 포기하는 대신 ‘진실’을 말하고자 했다. 우리 언론은 국민들에게 어떤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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