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볼 문제 하나. <월간조선>은 왜 뜬금없이 느닷없이 생뚱맞게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족보를 추적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조선일보>는 왜 <월간조선>이 터트린 "조기숙 전 수석 증조부는 조병갑" 기사를 받아 지면에 크게 띄울 생각을 했을까?

[가능한 답변.1] 조 전 수석이 워낙에 중요한 인물이라 인물검증 차원에서 파헤칠 필요가 있어서? - 그런데 인물검증이라면 그가 공직에 부임하기 전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다시피, 조 전 수석은 공직에서 물러난지 한참 된, 속된 말로 '이미 끈 떨어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새삼스레 현미경을 들이대는 건 '개그(개같은 야그의 준말)스런 짓' 아닐까?
 

   
  ▲ 조선일보 2006년 10월18일자 11면  
 

하나 더. <조선일보>가 정말 인물검증에 관심이 있는 신문사라면, 한물간 조 전 수석이 아니라 이번에 서울대 총장으로 새로 부임한 이장무 교수에게 현미경을 들이댔어야 하지 않나? 서울대 총장이 어떤 자린가? 대한민국 교육을 실질적으로 핸들링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다. 그런 자리를 친일파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가 접수했다는 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왜 그를 집중 조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미스터리한 일.
 
[가능한 답변.2] 조 전 수석과 관련해서 발견한 자료가 워낙에 중요한 것이라 시기상으로 조금 늦었지만 밝힐 수 밖에 없어서? - 그런데 '조기숙 증조부가 조병갑'이라는 것이 '빽투더퓨처' 해서 대대적으로 떠들만큼 중요한 사실이기나 한가? 조 전 수석이 그 조상을 팔아 명예나 권력을 누리거나 그 재산을 물려받아 호의호식했다면 혹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이 그런가 말이다.
 
우선, 조 전 수석에게 그것은 필경 입밖으로 내기조차 부끄러운 속앓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는 짓 없이 부모의 이름을 우려먹기만 해도 저절로 권력의 제일선으로 떠받들여지는 유신공주 박근혜 경우와는 아주 딴판이었단 야그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간조선>의 기사를 보고서야 놀라움의 탄식을 뱉었을 만큼 그것은 철저하게 감춰진 사실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조 전 수석의 자수성가에 '증조부 조병갑'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건 그야말로 '개념없는 짓' 아닐까?
 
[가능한 답변.3] 인물검증의 필요성이나 자료의 중요성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면, 생각할 수 있는 세번째 가능성은 이것 밖에 없다. <조선일보>가 본디 '역사 바로 세우기'나 '과거사 정리'에 관심이 있어서 '조기숙=조병갑 친척설'을 만방에 널리 알릴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것. 그런데 이거 이거 정말이야?
 
<조선일보>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전혀 무관심한 신문사란 것은 대한민국 공지의 사실이다. 아니,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그를 무지 증오하고 저주하는 신문사요, '과거사 정리'란 말만 나와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빨간 페인트를 마구 뿌려대는 신문사라는 건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 신문사가 역사를 바로 세우자고 '조기숙 전 수석 증조부는 조병갑'이라고 마구마구 까발렸다? '개가 껌 씹고 트름하고' '소가 뒷걸음치다 방귀 끼는' 소리가 이보다 더 할까.
 
군말 보탤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이번에 쌍으로 '조병갑' 건을 터트린 건, 미운 털 단단히 박힌 조 전 수석을 확실하게 손 봐 주자는 거다. 이미 끈 떨어진 사람 다시 한번 확인사살하자는 거다. 속된 말로 '도끼로 이마 까'에 이은 '까진 머리 또 까'의 결정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반론해 보라. 달리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런 짓을 했는지.
 
<조선일보>는 이번에 '조 전 수석=조병갑 증조부' 건을 터트림으로써 '<조선일보>에 찍히면 죽는다'는 것을, 그러니 '함부로 <조선일보>에 개기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노라고 자축하며 샴페인을 터트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얻은 것은 그게 전부요, 잃은 것은 무려 네 개씩이나 된다는 것을 어리석고 무지한 그들이 알까.
 
우선, <조선일보>는 이미 공직에서 물러난데다, 그 성장과정에서 증조부 덕을 땡전 한 푼 받아본 적 없는 조 전 수석을 흠집내기 위해 은밀하게 족보까지 뒤지는 파렴치한 짓을 자행함으로써, 그 스스로 '언론의 얼굴을 한 인간 사냥지'요, 편집증 환자들이 운영하는 '전문 스토커지'이며, 반대편은 철저하게 응징하는 '조폭찌라시'임을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셈이 됐다.
 
둘째, <조선일보>는, 조기숙의 경우와는 달리, 친일파 이병도의 손자인 이건무·이장무 형제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이나 서울대총장 자리에 오르내릴 때 인물검증의 책무를 전혀 도외시함으로써, 동학시대까지 꿰뚫는 <조선일보>의 '20촌 현미경'이 친일파 앞에만 서면 절로 작아지고 갑자기 먹통이 된다는 사실을 또한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셈이 됐다.
 
셋째, <조선일보는> 이전에 "정정당당한 정책대결과 정치역량의 비교가 아니라 남의 선대와 인척을 들먹이는 식의 치사한 수단은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라고 말하고도 조 전 수석의 선대를 들먹이는 '치사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자가수정 능력이 없는 정신박약지' 내지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신이상지'임을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셈이 됐다.(사설, <흑색판치는 '신한국'>,1997.7.6) 
 
넷째,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헌법(제13조 3항-"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이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제 사사로운 한풀이를 위해 조기숙 전 수석과 그 증조부 조병갑을 연루시키는 저열한 인신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말끝마다 헌법수호를 들먹이는 그 자신이 실은 헌법파괴세력임을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셈이 됐다. 실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 월간조선 2006년 11월호 표지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만 더 해야 겠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과거를 추궁하자면 <월간조선>은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월간조선>의 전신이 무엇인가. 바로 친일잡지 <조광>(朝光)이다. 한일합방을 "양국(한국·일본)의 행복과 동양 영원의 평화 위해 체결한 조약"(1941년)이라고 강변한 그 매국잡지 말이다.
 
"'한일 '합방'은 당시의 국내사정이나 국제관계로 보아 역사적 자연의 운명과 세계 대세에 순응하여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였다"는 이완용의 말과 비교해 보라. 판박이도 이런 판박이가 없다. 그 매국노에 그 매국잡지 아닌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조광>의 후손인 <월간조선>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외려 친일청산을 주도하는 현 정부 인사들을 타깃삼아 인간사냥놀이를 즐기고, 진즉 폐간당했어야 마땅한 친일잡지가 사상검증의 칼을 휘두르며 망나니 마냥 설치고 다닌다는 것, 그보다 더 원통 절통하고 치통 두통 생리통한 대한민국의 비극이 따로 없다.
 
그렇기로 <월간조선>이 자행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이 기막힌 인간사냥의 칼부림을 우리가 이렇듯 무력하게 구경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필칭 언론이라 이름하는 <조선일보> 패밀리가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라는 그 전능한 힘으로 자기에게 밉보인 사람을 백주 대낮에 테러하는 꼬라지를 이렇듯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 아닌가. 오호, 통재라.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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