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시행 모험보다 매각 실리 택해
올해 말까지 사옥 이전, 후보지는 광화문 인근 3곳
2010년 신축 건물 2000평+α 입주 기약하고 떠나

한국일보(사장 이종승)는 서울 중학동 사옥을 900억 원+α에 일괄매각하기로 한 H건설과 지난 18일 MOU를 체결하고 계약금 90억 원 중 40억 원을 먼저 받았다. 이 달 말 본계약과 함께 나머지 계약금 50억 원도 받은 뒤, 오는 11월말 재건축 사업이 최종 승인되면 잔금을 받고 사옥을 비워주게 된다.

   
  ▲ 한국일보 사옥. ⓒ이창길 기자 photoeye  
 
▷직접 시행 아닌 매각 택한 이유는= 한국일보 내부에서는 중학동 사옥부지 재개발 사업이 착착 진행되면서 직접 시행할 것인가, 아니면 일괄 매각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한국일보 이사회가 H건설 일괄인수 제안서를 낙점하기 전에 금융권 기업인 M사가 재개발 후 건물을 사들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M사 쪽에서 신축건물 우선매수청구도 허용하지 않는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고 판단해 H건설을 택했다. 게다가 직접 시행사로 나설 경우 인근 지하철 등 공정에 걸림돌이 있었고, 만에 하나 공기가 늦춰졌을 경우 감수해야 할 금융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었다.

반면 서울경제 지분 7.7%를 가지고 있기도 한 H건설은 상대적으로 나은 인수안을 제시했다. 한국일보는 H건설에 사옥을 넘기면서 매각대금 900억 원외에 새로 들어설 건물의 2000평을 우선매수하고 여기에 2000평을 싼값에 더 빌리는 데 합의했다. 신축 건물에 부착될 제호·전광판·현수막의 소유 및 게시권도 얻기로 했다. 지난 18일 한국일보와 H건설은 위 내용을 담은 MOU를 작성했고, 이 달 말 본 계약을 체결하면서 채권단 운영위원회 승인만 받으면 된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모험 보다 실리를 택한 셈이다.

▷매각대금+대주주 증자금 어디에 쓰나=워크아웃 중인 한국일보는 매각대금 900억 원과 최근 장재구 회장이 가져온 증자금 200억 원, 모두 1100억 원을 함부로 쓸 수가 없다. 이미 지난 6월말 우리은행 등 채권단과 맺은 MOU 상에 쓰일 곳이 모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채권단은 지난 6월30일 2000억 원에 달하는 한국일보의 무담보채권을 할인매입(캐시바이아웃·CBO)하기로 합의하면서 장 회장의 증자와 사옥매각 계약, 노조의 구조조정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아울러 들어올 돈의 쓰임새도 정해 한국일보가 매각대금 잔금까지 모두 받게 되면 근저당권 설정 해제와 CBO 발행, 퇴직금 지급, 미납 세금 납부로 신규유입 자금 대부분을 써야 한다.

이외에 이전 사옥 임대 등 각종 비용을 제한 뒤 남는 운영비는 수십억 수준이라는 게 내부 전망이다. 대신 사옥매각과 CBO로 2000억 원의 빚을 털고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남는 것은 지역 윤전공장에 설정된 근저당권 뿐이며, 내년 6월말까지 이마저도 해결하면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게 된다. 2002년 9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5년여만의 일이다.

▷분사·사옥 이전 등 남은 일정은= 사옥을 매각하고 떠나기에 앞서 한국일보는 몸집을 줄이려 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말 한국일보를 실사한 뒤 △대주주의 2차 유상증자(200억 원) △윤전부를 포함한 제작부 분사 △편집국 구조조정(50여 명)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위원장 임대호)는 이미 '경영정상화를 위한 기업개선작업·제반구조조정작업에 적극 동의하겠다'고 지난달 22일 서명했다. 그러나 오는 10월말 새 집행부 교체를 앞둔 노조 내부 반발 움직임이 향후 일정의 관건으로 잠복해 있다. 특히 올해 말까지 비 편집국 사원 140∼160명을 분사할 계획인 한국일보 경영진이 이른바 '연어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회사를 떠났던 기자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있어 '해고회피노력'을 놓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올해 말까지 새로 입주할 사옥 후보지는 광화문과 멀지 않은 3곳으로 압축됐으며, 2000평 정도의 규모를 물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성남공장 윤전시설을 통해 제작하기로 했다. 서울 중학동 신관과 평창동, 성남, 창원에 있는 윤전공장 중 이미 평창동 공장은 경향신문에 빌려준 상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평창동 시설을 활용하기로 이미 논의된 터라 이주 후 신문제작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일보·서울경제·코리아타임스·스포츠한국·소년한국일보 등 자매지 구성원들이 어떻게, 어느 선까지 새 사옥으로 옮겨 갈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H건설은 재개발 공사기간을 40개월로 잡고 있어 계획대로라면 한국일보는 오는 2010년 중학동 14번지 새 건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잃어버린 10년' 뒤 새 출발 어떻게=지난해 5월 한국일보 편집국 비상대책위원회는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 뼈아프다.…우리를 암흑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갈 '별(핵심가치)'은 독자"라며 "실패의 원인제공자가 누구든 희망의 이유는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자성했다.

이후 한국일보는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지면개편 등 각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새 출발할 한국일보호의 선장도 내년 10월까지 임기가 남은 이종승 현 사장이 계속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공연 주최과정에서 모 본부장의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으나, 취임 전 절박한 상황을 개선한 이 사장을 향한 장 회장의 신임이 여러 풍문 속에서도 여전하다는 평가다.

결국 빚을 모두 갚은 뒤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은 내부 자성처럼 신문을 잘 만드는 것, 독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은 지난해 6월9일자 칼럼 <이런 신문 하나쯤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중학동 14번지' 52년 역사를 뒤로하고 옛 영광을 찾아 나서는 한국일보의 심정이기도 하다.

"한국일보에는 '가장 오랜 역사'의 후광도, '최대 발행 부수'의 후광도 없다. 민주화운동이나 진보적 가치와 관련된 위세도 모자라고, 회사의 지배구조가 우아하다고도 할 수 없다.…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한국일보가 우리 사회를 움켜쥔 '큰 손'의 완전한 포로나 동맹자가 된 적은 없다.…독자들도 더러 들으셨겠지만, 지금 한국일보 사정이 좋지 않다.…내부의 안간힘만으로 한국일보가 다시 일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의 중심을 잡는 신문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독자라면, 한국일보에 힘을 보태주시기를 간청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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