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를 살인자라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살인 및 살인미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죄로 징역 15년을 언도받고 현재 전주교도소에서 10년째 복역하고 있는 허정길씨.

대전 중부시장에서 야채상을 했던 허씨는 시민항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던 1987년 6월 19일 밤 11시경, 전경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대전시내 삼성네거리에서 대전역 방면으로 버스를 몰았다. 그가 몰던 버스는 쏟아지는 최루탄을 맞아가며 전경의 저지선을 뚫었다.

“내가 전경 저지선을 돌파했다. 대전역으로 진출하자”

버스를 몰고 대전우체국 앞에 있던 시민 대열과 합류한 허씨가 이렇게 외치자 시민들은 환호성으로 그를 격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승리감도 잠시, 허정길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차디찬 수갑이었다. 허씨가 운전했던 버스가 전경대열을 덮치면서 전경 1명이 사망하고 두명의 전경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목격자였던 박영기씨는 이 사고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따른 결과였다고 증언했다. 허씨가 처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는데 전경들이 버스를 향해 최루탄을 난사, 버스안으로 날아들었고 최루탄이 터지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허씨가 당황해 가속페달을 밟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당시 술을 먹고 스스로 영웅심리에 도취된 나머지 데모 진압 경찰에게 겁을 주어서 그로 인하여 심리적 쾌감을 누리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픈 어리석은 심정에서 결국 살인의 결과까지 용인”했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술을 먹고 영웅심리에 도취돼 의도적인 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격자 박씨는 ‘술을 먹었다’는 부분과 관련, 최루탄에 의해 얼굴이 상기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대전 충남 6월 민주항쟁 10주년 기념사업회 산하 허정길 석방대책위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정길씨가 누구인지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그를 파렴치범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6월 항쟁의 주역이었다. 일반시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용기를 냈던 민주시민이었다. 그의 명예회복이 빠른 시일내 이뤄졌으면 한다”고 허씨를 평가했다.

지난 26일 면회를 다녀왔다는 박씨에 따르면 정씨는 출감한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이냐는 질문에 “(버스에 치어 사망한) 박00상경의 무덤앞에 가겠다. 그의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내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정길씨는 지난 10년간 불합리한 교도행정의 개선과 자신을 시국사범으로 분류해달라며 교도소 당국과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 덕분에 서울, 대구, 김해, 부산, 원주 등 10여개의 교도소를 거치긴 했지만 결국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허씨는 현재 시국사범의 수인 번호인 2002번을 달고 복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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