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대 대선에서 영·호남의 언론은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둘러싸고 서로 상반된 보도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후보에 대해 영남의 언론은 “결단력은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취각과 육감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에 관한 한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 호남의 언론은 “앞뒤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나 결단을 내린다”고 깎아내렸다.

김대중 후보에 대해선 호남의 언론이 “일에 대한 치밀함과 박식함 때문에 당의 모든 일에 대해서도 일일이 챙기는 꼼꼼함을 보인다”라고 호의적인 보도태도를 보인 반면 영남의 언론은 “30여년의 정치생활이 역경의 연속이었던 데다 역대정권과 투쟁을 벌여온 탓으로 그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강경투사’에 가깝다. 또 카리스마적 지도방법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부정적인 측면을 앞세웠다.

지역주의에 오히려 편승

이런 보도태도에 대해 강상현 연세대 신방과 교수는 ‘지방신문에 나타난 대통령 후보 이미지 비교분석’이란 논문에서 “객관적이어야 할 공정성 윤리는 ‘지역주관’에 의해 매몰되고 있고, 기존의 지역감정이나 비합리적 지역주의를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편승해 지역의 지배적 정서와 합류하는 지역기관지적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기관지적 보도 양태는 14대 총선에서 절정을 이뤘다. 지역언론은 YS텃밭, DJ영지, JP안방, 강원도 푸대접, 충청도 핫바지, TK정서 등등의 조어(造語)를 만들어가며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데 앞장 섰다. 특히 대전일보가 보도한 뒤 전국의 언론이 유포시킨 ‘충청도 핫바지론’은 총선이 끝난 뒤 법적 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재판결과 김윤환 당시 민자당 대표가 충청도 핫바지란 발언을 했다는 대전일보의 보도내용은 허위임이 밝혀졌다.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온 15대 대선에 대한 지역언론의 보도행태는 14대 때보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 분명하다. 우선 14대 대선 당시 영남과 호남으로 분류됐던 지역구도가 보다 다각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주자만 해도 이회창(대전·충청), 이수성(대구·경북), 박찬종(부산·경남), 김덕룡(전북), 이인제(경기), 이한동(경기), 김윤환(대구·경북), 최병렬(부산·경남) 등 거의 전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 오랫동안 자기 지역의 ‘영주’로 군림하고 있는 국민회의 김대중(광주·전남), 자민련 김종필(대전·충청) 총재를 합칠 경우 거의 전국이 도별 블럭으로 나뉘어 지역주의 경쟁을 벌일 공산이 크다.

통합 등 거시적 접근필요

지방지 전체차원에서 살펴봤을 때 아직까진 우려할만한 수준의 지역이기주의 보도 태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지는 자기 지역에 연고를 둔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를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후원하는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 수원에 본사가 있는 중부일보의 경우다. 중부일보는 신한국당 대선 예비주자인 이인제 경기지사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기사를 연속 게재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야권이 이 지사의 도정공백을 문제삼자 ‘야권, 이인제 흠집내기’라는 기사를 내보낸 것을 비롯해 ‘차차기란 내 사전에 없다’ 등 이 지사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쓴 보도를 내보냈다. 중부일보는 또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 지사 즉시 사퇴 9.3%, 도민 62%가 사퇴 불필요 응답’ 등의 기사까지 게재했다.

지역언론들이 이런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경남신문의 편집국 중견간부는 “지방신문의 고유한 특성상 그 지방의 지역정서, 지역이기주의적 속성등을 감안한 선거보도가 불가피하다”며 “전국을 포괄하는 중앙지적 관점의 선거보도 원칙 및 기준 제시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주요 취재원일 수 밖에 없는 그 지역출신 대선주자가 지역에 대한 선심성 공약을 내보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관련 기사를 키울 수 밖에 없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지역언론이 지역사회의 다중적 분위기에 편승해 스스로 공정성을 희생할 때 그것은 결코 실질적인 지역발전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방지가 지역의 정서를 무시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지역주민들을 추종하는 편집태도보단 지역의 통합·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 차원에서 대선 후보자를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대 대선 당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초원복국집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김기춘 전 법무장관은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 광주 전남 가봐라. 무등일보다, 전남일보다 김대중이 욕하는 것 있는가. 어쩌든지 자기 고장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너희들(국제신문, 부산일보)은 뭐하는 놈들이냐.

강회장, 좀 한번 바쁘더라도…편집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이런 놈들 뭐 (돈) 주면서, 돈 걷어 뭐할라요.” 언론이 지역주의에 사로 잡힐 때 언론은 스스로 권력의 시녀임을 자청하는 것이란 사실을 김 전장관의 발언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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