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석한 두 명의 농민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졌다. 고 전용철(46·충남 보령), 고 홍덕표(68·전북 김제) 농민. 국가인권위는 진상조사 결과 "전씨는 경찰의 방패에 떠밀리면서 뒷머리에 충격을 받아 넘어진 뒤 연이어 경찰봉에 폭행당한 것"으로, "홍씨는 방패로 얼굴과 뒷목을 가격 당해 경추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전씨는 사고 이후 9일만에 뇌출혈로 숨졌고, 홍씨도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연명하다 12월18일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국가인권위는 이 같은 진상조사를 발표하면서 "각종 자료 검토 결과 경찰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방패 날을 세우거나 위에서 내리찍는 행위, 방패로 몸통 부위가 아닌 부분을 미는 행위를 금지하고 진압봉은 '하퇴부' 위주로 진압하라는 경찰장비 사용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발생 42일만에 국민에게 사과했고,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그 이틀 뒤 자진사퇴했다.

   
  ▲ '포항지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 사고원인 진상조사단'은 28일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방패에 찍혀 생긴 치명상이 하씨가 뇌사상태에 이른 직접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이영철 전 포항지역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 ⓒ이창길 기자 photoeye@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한 노동자가 경찰의 방패에 맞아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건설산업연맹 포항지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은 지난 16일 포항 형산로터리에서 열린 집회 과정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뇌사상태에 빠졌다. 집회 현장에서 쓰러진 하씨는 포항 동국대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채 인공호흡 등에 의존하고 있다.  

진상조사단 "경찰이 하중근씨 후두부 방패로 찍어 치명상"

'포항지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 사고원인 진상조사단'은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기자회견장에서 지난 22일부터 시작한 1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단은 "피해자의 신체에 남아 있는 상처와 머리 부분의 증상 등과 제반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는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방패로 머리 우측 뒷부분을 가격당하여, 이로 인한 충격으로 피해자의 뇌 우측 앞부분에 이른바 '대측손상'을 입게 되면서 피해자 뇌의 우측 전두엽에 출혈성 뇌좌상과 뇌부종이 생기게 되어, 현재 사실상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는 주치의인 포항 동국대병원 신경외과 김진욱 교수가 작성한 소견서에서 확인된다. 김 교수의 소견서에는 "△두피열상, 우측 후두부, 일직선 모양으로 약 5cm △출혈성 뇌좌상, 우측 전두엽 △뇌부종" 등이 적시돼 있다. 즉, 환자가 머리 오른쪽 뒷부분을 강하게 가격당했고 그 충격에 의해 출혈성 뇌좌상과 뇌부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지난 16일 포항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집회참가자의 머리와 목 부분을 방패로 가격하고 있는 장면을 '민중의소리' 기자가 포착했다. 사진 속의 집회 참가자가 하중근씨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찰의 진압 행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당시 집회 현장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의 상처 부위를 통해서도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부상자 16명 중 15명이 모두 얼굴과 머리 부위에 방패로 찍혀 상처를 입었다. 부상자들의 상태는 '머리열상' '입·치아파열' '좌측눈 상부파열' '눈하부 찢어짐' '광대뼈 손상' 등으로,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하중근씨가 쓰러진 바로 그 시간 같은 집회 현장에 있었고 경찰의 진압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이 방패를 이용해 집회 참가자들의 상체 윗부분을 가격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진압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방패와 곤봉 등을 사용하여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손의 집회참가자들에게 경고방송도 없이 닥치는 대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집회 대오 오른쪽 앞에 서 있던 하중근 조합원의 후두부를 방패로 찍어 치명상을 입힌 데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1차적 결론을 내렸다.

"노조 때리기에 앞장선 언론들, 경찰의 살인적 폭력에는 입 다물어"

진상조사단에는 포항환경운동연합 강호철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권영국 변호사, 전국민중연대 박석운 집행위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등이 참가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22일부터 포항 동국대병원에 내려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시 집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청취하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단은 특히 언론에 대해 "포스코 본사 건물 점거에 초점을 맞추어 포항지역건설노조 때리기에 앞장섰던 언론들은, 정작 포항건설노조의 집회현장에서 벌어졌던 무시무시한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과 살인적 가학행위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언론들이 포스코의 공작에 놀아나고 있는가? 하중근 조합원이 경찰에 의해 뇌사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경찰의 공작이란 말인가"라고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지금이라도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심층취재해서 적극적으로 보도해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16일 포항 집회 현장에 있었던 이영철 포항지역건설노조 전 수석부위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집회 대오 네 번째 줄에 하중근 조합원과 같이 서 있었다"면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경찰 봉쇄를 뚫고 포스코 본사로 떠나자 곧 경찰이 갑자기 분말기를 뿌리고 덮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깜짝 놀라 전 조합원들이 뒤돌아 도망갔고, 10여분 뒤 사람이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하 조합원이 쓰러지는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사고 직전까지) 바로 옆에 같이 서 있었고 (하 조합원이) 앞으로 나가다가 경찰의 진압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단에 참여한 권영국 변호사는 "경찰이 진압에 들어가기 직전에 발로 방패 끝에 씌운 고무바킹을 벗겨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고무바킹을 벗겨버린 상태에서 가격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를 보면 둔탁한 충격이 아니라 예리하게 찢어진 것 같다"면서 "만약 사망에까지 이른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찰이 경험을 통해서 감지하고서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은 하중근씨가 사망에까지 이른다면 경찰청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지방경찰청장과 현장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진상조사단은 국가인권위에 이번 경찰의 폭력사태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청해 놓았다. 언론의 '침묵'과 '묵살'이 그 심각성을 가리고 있지만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 사회적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포항지역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과 건설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28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공동대책위는 △실질적 사용자인 포스코가 직접 나서 성실교섭으로 문제 해결 △살인적 폭력을 자행한 경찰 책임자 처벌 △자본과 권력에 유착된 언론사 책임자 퇴진 및 공정보도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찰 "외부 진상조사단 조사결과 받아들일 수 없다"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경찰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 직후 내부 조사팀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 중인 경북경찰청의 유상렬 홍보담당관은 "어떻게 해서 다쳤는지에 대해 우리가 찍어놓은 비디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하씨가) 넘어져서 다친 것인지 부딪힌 것인지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10여일간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조사팀의 활동과 관련해 유 담당관은 "조사를 위해 피해 당사자쪽의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애로를 겪고 있다"며 "조사결과가 나와 경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길·조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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