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각 신문사가 경쟁적으로 여론조사를 벌이면서 조사기법과 보도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사의 경우 기자를 조사원으로 동원하거나 설문내용과는 다른 기사제목을 뽑는 등 여론을 왜곡할 소지마저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14, 15일 이틀간 편집국 기자 60여명을 조사원으로 동원해 신한국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를 16, 17일 잇달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 ○○○기자입니다”라고 조사원의 신분을 밝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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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기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조사원의 성별, 억양, 어투 등에 따라 응답자의 대답이 달라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라면서 “이때문에 여론조사에서는 표준어를 쓰고 중립적인 태도를 갖는 여성을 조사원으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동아일보가 기자들을 조사원으로 동원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기자가 조사원으로 동원될 경우 응답자들이 긴장과 함께 방어심리가 발동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조사기관으로 동아일보를 밝힌 것은 동아일보에 특정한 느낌을 갖는 응답자들에게 자유로운 대답의 여지를 앗아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의 한 간부는 “대의원 명단을 입수한 시간이 14일 오후 6시 30분이었기 때문에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할 수 없었다”면서 “기자들이 조사를 할 경우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와는 별도로 14, 15일 신한국당 선출직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한겨레신문은 설문문항과 기사제목을 달리 뽑아 잡음을 낳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16일자 신문 1면 머릿기사에서 “신한국 전대 대의원 이회창 지지 37%”라는 제목과 함께 “대선 예비후보 지지도”를 그래프로 처리했다. 그러나 기사에서 밝힌 설문 문항은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 후보”를 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설문문항을 작성할 때 후보자에 대한 지지도와 호감도, 그리고 자질은 서로 구분해서 처리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한겨레의 설문내용은 지지도가 아니라 후보자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가깝다”고 평했다.

이 전문가는 “또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의 자질을 물을 경우 이회창 대표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자질을 묻는 질문에 가까운 설문문항을 지지도로 기사화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 여론조사팀의 원성연 팀장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영향 탓인지 지지도를 물으면 응답자들이 자기 방어를 하면서 대답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특히 응답자들이 여야의 이분법적 개념이 깨진 후 지지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한국일보는 지난 14일자 신문에서 SBS와 공동으로 개최한 시민포럼 이후의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시민포럼 전후의 후보자별 지지도를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포럼 전 여론조사의 경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남녀 1천5백명을 무작위 추출해 조사한 것이며, 포럼 후의 조사는 같은 방법으로 추출된 표본중 시민포럼을 읽었거나 시청한 1천5백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일보는 이같은 점을 고려, 편집자주에서 이같은 차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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