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감독을 만난 건 3년 전 한 술자리에서였다. 자신을 ‘푸른영상’의 대표라고 간단히 소개를 마친 그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참 말이 없었다. 가끔씩 내뱉는 “응” 또는 “어, 그래” 같은 동조의 말이 그가 술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마치 ‘난 이 술자리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일까?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보다 타인의 얘기를 듣는 게 더 편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 <송환>에서 그런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때론 미안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해야 할 질문들을 차마 하지 못하고 카메라도 엉거주춤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는 소외계층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진정성 때문인지 그의 영화들은 칼날보다도 매섭게 우리의 위선을 위협할 때가 많다. 간첩이라고 불렸던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주겠는가. 그는 ‘간첩이라는데 어쩌지’라는 두려움에서 ‘순수한 표정도 있네’라는 호기심으로, 그리고 다시 ‘우리와 똑같이 고통 받고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간첩’ 할아버지들에게 다가선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천성이 아니었다면 상업영화 감독을 꿈꿨던 그가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인 다큐멘터리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시절 밴드생활도 하고 양아치처럼 놀만큼 놀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80년 상계동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철이 들게 된다. 그가 서른 살이 넘어 찍기 시작한 <상계동 올림픽>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는 그 때가 “민주항쟁의 시기로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면 겉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속으로는 바뀔거라고 믿었다.

<송환>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제작기간만 12년에 자료 테이프만 500여개가 넘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총 800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는 “여기에 영화를 도와준 사람들이 흘린 땀과 노력을 더하면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출연 배우들만 봐도 그렇다. <실미도>의 설경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원빈보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물론 김영삼·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이 등장한다. 김수환 추기경과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 등 종교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 매체 기자들도 대가없이 전격 출연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이 있었던가. <송환>은 총칼 없이 남북의 문제를 해부한 진정한 블록버스터이며 가장 사실적인 전쟁영화인 것이다.

그는 사실 <송환>에서 매체에 대한 얘기를 더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조중동은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며 “매체들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국민을 기만하는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영화 속에서도 조선일보가 미전향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나오는데, 미전향이란 말 속에는 아직 전향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전향한다는 뜻이 담긴 오만한 말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는 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언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쓴 기사를 수십만 명이 본다고 생각하면 섬뜩해서 왜곡, 작문 기사를 쓸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는 여전히 언론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기자들 스스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길 바라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언론이 떠난 자리에서 그의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송환>을 수십만, 수백만 명이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도 똑같은 ‘섬뜩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는 것을 절대 게을리 할 수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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