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가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극우논객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을 비판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최근 조 사장이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국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글로 탄핵을 찬양한 일도 있어 조선일보 사내에서는 조 사장의 이 같은 독자행보가 조선일보 전체의 의견인 양 오해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주목된다.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김성현 기자는 지난 19일 발행한 노보에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께 드리는 레터>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김 기자는 이 글에서 조갑제 사장에 대해 “기자가 아닌 시민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라며 조사장의 글이 언제부터인가 변하기 시작했음을 지적했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김 기자의 글처럼 조갑제 사장의 글에 과거 동조하고 공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근래 들어 대부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조선일보 전체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대해서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조선일보 기자도 “조갑제 사장의 글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내부에서 이처럼 공론화된 것은 처음”이라며 “이 같은 내부 문제제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는 노보에 기고한 글에서 “조갑제 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며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사실이 정의와 국익을 구현하려는 것이지 정의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편집장의 언론관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글을 보며 의아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사실이 아닌 의견, 설명이 아닌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조갑제 사장의 개인 홈페이지에 실린 글에 대해서도 비판은 이어졌다. 김 기자는 조 사장이 지난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라는 글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제 전투적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사회 일각에 퍼지고 있는 친북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헌법 수호기능을 총동원해 반란을 저지하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며 지금부터 그런 동원력을 준비할 때’라는 구절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우려했다.

김 기자는 “일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북 좌파’ 의혹을 제기하셨기에 그 우려는 더해갔다”며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에서 기자가 아닌 ‘시민 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기우(杞憂)일까”라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이어 지난해 말 조 사장이 홈페이지에 “탄핵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야3당의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이를 만들어낼 인재는 없는가”라며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대신 개헌 등을 조건으로 다는 건 어떨까 하는 이야기 시중에서 많이 나온다고 했다”고 주장한 대목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기자는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거의 매일 받고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김 기자는 특히 조 사장의 글이 조선일보의 공식입장인 것으로 등치될 우려도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기자는 "특히 언론의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은 편집장의 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견을 곧바로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과 등치시키도 합니다. 편집장께서 회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계신 비중이 결코 적지 않기에, 이 후배는 때때로 곤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합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김 기자는 보수의 길과 관련해 “최근 자주 회자되는 보수의 위기를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며 지난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 취재경험을 예로 들었다.

김 기자는 “일부 주최자들은 ‘반미’나 ‘친북’을 조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과격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조금 더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그 시위를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저는 보수가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성현 기자가 노보에 기고한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께 드리는 레터> 원문이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께 드리는 레터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께.

작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편집장의 ‘대사건 대추적-대폭발’을 읽었습니다. 동네 헌 책방에서 발견하곤 반갑게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 광주부터 1985년 2·12 총선,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편집장의 취재기를 읽으며 저는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특히 생생한 취재를 통해 ‘선명 야당’이던 신민당의 약진을 중산층·20~40대·아파트 주민·고학력자의 지지 때문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구절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1980년대 편집장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발로 뛰면서 쓴 기사에 대한 자긍심이 어떤 것인지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사실이 정의와 국익을 구현하려는 것이지 정의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편집장의 언론관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글을 보며 의아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사실이 아닌 의견, 설명이 아닌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편집장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서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제 전투적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요. 사회 일각에 퍼지고 있는 친북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헌법 수호기능을 총동원해 반란을 저지하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며 지금부터 그런 동원력을 준비할 때”라는 구절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일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북 좌파’ 의혹을 제기하셨기에 그 우려는 더해갔습니다.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에서 기자가 아닌 ‘시민 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작년 말 편집장께선 홈페이지에 “탄핵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야3당의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이를 만들어낼 인재는 없는가”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이어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대신 개헌 등을 조건으로 다는 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시중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거의 매일 받고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자 역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언제든 자유롭게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리는 글의 성격은 엄격하고도 정밀해야 하는 기사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는 기자로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언론의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은 편집장의 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견을 곧바로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과 등치시키도 합니다. 편집장께서 회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계신 비중이 결코 적지 않기에, 이 후배는 때때로 곤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 영화 ‘황산벌’을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보았습니다. 코미디가 ‘역사의 희화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선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우스개로 만든 비(非)국민적, 반(反)역사적 행태” “민족사적 범죄”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한국사의 로마는 신라’라는 평소 편집장의 지론을 알고 있기에 역사에 대한 논쟁을 감히 펼칠 생각은 없지만, 글을 읽으며 저는 최소한의 유머를 불허하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영화에 대한 변론 삼아 뒤늦게 인용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갈 길에 대한 편집장의 견해에 작은 이견을 적어봅니다. 저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혜택을 사실상 가장 많이 누려온 20~30대가 그 공과(功過)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최근 자주 회자되는 ‘보수의 위기’를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입니다.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저는 사건 기자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촛불 시위’를 수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 주최자들은 ‘반미’나 ‘친북’을 조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과격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조금 더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위를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저는 보수가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내 선·후배들도 이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를 더 벼려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자정(自淨)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강조하셨듯 기자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인 이상,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초조하더라도 시국을 끈기 있게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사회를 갈갈이 찢고 있는 ‘이분법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고난의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온 조선일보 80여년 역사를 손쉽게 평가절하하고 매도하는 ‘철부지’들이 적지 않은 지금, 이 같은 글이 그들에게 한번 더 마구잡이로 악용되지 않을지 적지 않은 걱정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시점에서, 편집장의 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막 6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의 용기로 여겨주십시오. 봄이 왔는데도 아직 춥고 탁하기만 합니다. 편집장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성현·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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