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출입기자들 휴대폰 두개씩 소지 주로 공중전화 사용
외교부·청와대 기자들도 취재원 문책 등 부담 … ‘볼멘소리’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 국가 정보기관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 사실이 최근 속속 밝혀지면서 언론의 취재활동에 대한 국가기관의 감시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달 말 NSC와 외교통상부의 갈등에 대한 기사를 썼던 국민일보 조수진 기자와 지난해 5월 서해교전 관련기사를 썼던 한국일보 김모 기자 이외에 상당수 기자들도 통화내역을 조회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기관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 실태를 점검한다.

▷국방부 출입 기자 사례= A일간지 국방부 출입기자는 “최근 국방부 외교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기자 통화내역 조회 한번 안 당하면 기자가 아니다’ ‘기자로서 영 곰바우가 아니면 다 당했을 것’이라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수 기자들이 국가기관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이를 기사화하는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민감한 기사를 쓸 때 자신과 통화했던 취재원이 조사를 받는 경우가 있어 통화내역을 조회당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국방부를 출입하는 유용원 기자는 “한국일보나 국민일보 기자의 최근 통화내역 조회 이전에 나도 통화내역 조회를 의심할 만한 경험을 많이 했다”며 “지난해 3월초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4월 말 ‘JSA의 경비책임을 유엔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환수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뒤 4월과 5월 나와 통화했던 국방부 관계자와 예비역 장교까지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유 기자는 “특히 예비역 장교는 ‘기무사뿐만 아니라 국정원에서도 조사를 하는 바람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전했다”며 “내 경우 지난해에만 2∼3건의 기사에 대해 최소 20명 이상의 취재원이 조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유 기자는 지난해 5월1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일보와 국민일보가 지난달 29일 보도한 <JSA경비 책임 한국군 이양 추진> 기사와 이에 앞서 또 다른 모일간지가 보도한 <주한미군에 땅 500만평 추가제공> 기사의 취재원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이는 최근 청와대에서 이런 기사들을 제시하며 국방부의 보안문제가 심각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A일간지 출입기자도 “보통 단독보도가 나가거나 미묘한 보도 등에 대해선 국방부 안 기무사에서 보안조사를 하는 데 작년만 해도 이런 조사가 5∼6차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난 4월 민감한 국방부 관련 기사를 쓴 뒤 친한 취재원으로부터 ‘나와 통화건수가 많아서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 받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실제로 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주로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핸드폰도 두개씩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기자들의 통화내역 조회는 주로 기무사와 국정원이 담당한다. 국방부와 관련된 사안은 산하 부대인 기무사에서, 외교부와 NSC, 통일부와 관련된 사안은 국정원에 의뢰해 통화내역 조회를 한다.

▷외교부·청와대= B일간지 외교부 출입기자는 “이전에도 고위 관리들은 전화 통화를 조심했다”며 “당국자들이 통화에 부담스러워하니 (취재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최근 들어 심해진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감청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의 한 기자는 “딱 꼬집어서 내가 감청을 당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통화감이 멀어지면 감청의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일부 기자들은 공중전화를 사용하거나 직접 만나는 취재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취재원들도 별도의 개인전화를 구입하는 등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
C일간지 국방부 출입기자는 “감청을 당한 적은 없지만 기무사령부 등 군 전화는 다 감청된다고 생각해 되도록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한다”며 “취재원들도 이런 방식을 덜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D일간지 청와대 출입기자는 “민감한 기사를 썼을 때 기사에 등장하는 해당 취재원이 문책을 당하거나 심리적 위축을 겪는 일이 종종 있어 막연하게 통화 감청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중요한 일로 전화할 때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기자실 공용전화나 송고용 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국가기관의 어떤 공무원들은 공용전화 말고 자기 핸드폰으로 전화하라고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최근 통일부의 한 간부는 별도로 개인전화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며 “통화내역 조회가 알려지면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노출을 꺼리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통화내역 조회 절차 타당한가= 지난해부터 외교부 등 정부 부처보다는 NSC가 국정원에 직접 기자통화내역 조회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기자들의 얘기다.

E일간지 통일부 출입기자는 “과거엔 특정 기사가 보안유출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의심될 경우 각 정부 부처가 국정원에 기자의 통화내역 조회를 요청하거나 국방부처럼 기무사를 통해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청와대의 NSC가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이를 두고 기자들 사이에는 ‘NSC가 외교안보 업무를 맡는 곳이지 기자 통화내역 조사를 시키는 곳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최소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비밀문건을 기사화 하려는 언론사 간부들은 없을 것”이라며 “모든 사안을 비밀로 묶어두려는 사고를 버리고 정부가 정보공개에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는 “현재 기무사나 국정원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는 국가기밀 이외의 사안에도 무차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게 문제”라며 “내 기사 때문에 취재원이 조사를 받으면 앞으로 누가 나와 접촉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유 기자는 “이같은 취재활동의 제약을 막기 위해서라도 통화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최소한도로 국한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문팀 종합 (조현호 · 김종화 · 이선민 ·  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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