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언론자유와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사안을 조사중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 측은 이미 알려진 국민일보 조수진 기자와 한국일보 김모 기자 외에 국정원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의뢰를 받아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례가 더 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기자통화내역 조회 문제가 불거진 올해 초부터 국정원에 통화내역 조회를 한 기자의 이름과 조사일시·기간, 의뢰를 한 NSC 관계자가 누구인지 묻는 질의서를 여러 차례 보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지난 19일 권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당시 보도된 것과 관련) NSC측으로부터 보안사고 조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문의가 있어 국가기밀 유출 및 누설자 색출을 위해 ‘통신사실 확인자료’ 조회 등을 통해 국가기밀 누설자를 적발했다”며 기자 통화내역 조회 사실을 시인했다. 국정원은 또 “보안사고 조사결과를 NSC 이종석 차장에게 통보한 사실이 있다”며 “그러나 언론사찰 등 여타 목적을 위해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어떤 기자를 대상으로 통화내역을 조회했는지에 대해선 ‘업무특성상 개별사안에 대해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통화내역 조회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국방부를 출입하는 유용원 기자는 “나도 통화내역 조회를 의심할 만한 경험을 많이 했다”며 “지난해 3월 초와 4월 말 민감한 내용의 기사를 쓴 뒤 4월과 5월 나와 통화했던 국방부 관계자와 예비역 장교까지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D일간지 청와대 출입기자는 “민감한 기사를 썼을 때 기사에 등장하는 해당 취재원이 문책을 당하거나 심리적 위축을 겪는 일이 종종 있다”며 “중요한 일로 전화할 때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기자실 공용전화나 송고용 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언론계에서는 국가기밀 유출 등의 이유로 뚜렷한 기준 없이 기자 통화내역 조회를 실시할 경우 취재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영세 의원은 이에 대해 “기자 통화내역 조회는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이 큰 만큼 국회 등 외부 기관이 견제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 정비가 안되더라도 국가기관 종사자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학 교수들도 기자통화내역 조회를‘구시대적 발상’이라며 통신비밀보호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문화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우승용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권력이 언론을 감시한다는 것은 유치한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구 안기부, 현 국정원에 잔존하는 공작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류한호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언론정책 없는 노무현 정부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을 법원 영장제로 전환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며, 기자뿐만 아닌 일반 국민의 통신 전반에 대한 보호대책도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관련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조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개인의 사생활이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며 “국정원이 수시로 기자 통화내역을 조회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국민일보 조수진 기자 외엔 조회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회를 많이 하고 싶어도 통신비밀보호법의 제약과 인권침해 때문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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