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사람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 연구를 둘러싼 엠바고 파기 논란에 대해 연구팀은 물론 과학계 전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본인은 엠바고 파기 논란 당사자도 아니고 더구나 지금은 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도 아니다. 그리고 홍혜걸 기자에 대해서도, 중앙일보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언론사 간 논쟁에도 끼어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랫동안 과학을 담당했었고 지금도 과학을 사랑하는 기자로서 이번 일로 인해 기자와 과학자, 언론과 과학계 사이의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홍혜걸 기자가 얘기한 것처럼 “기자로서 눈이 뒤집힐 정도로 큰 업적”이고 “기자라면 안쓰고는 버티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엠바고 파기 논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홍혜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일보를 포함해) 국내 어느 언론사도 엠바고를 요청받은 일이 없다. 국제적 엠바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학자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말은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 세계적 과학저널들의 엠바고 정책을 오해하거나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주간지인 이들 저널은 기자들이 연구내용을 더 정확히 심층 취재한 뒤 기사를 쓰도록 하기 위해 발행 1주일 전에 다음주에 게재되는 논문 정보와 보도자료 등을 엠바고와 함께 회원 및 등록기자들에게 e-메일로 배포한다.
또 논문을 제출한 연구자들에게도 엠바고 준수 서약을 받고 이를 어길 경우 논문 게재가 취소되거나 향후 논문 제출시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언스나 네이처는 개별 언론사에 대해서는 따로 엠바고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논문 정보를 미리 보는 기자들은 정확한 취재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엠바고를 설정한 저널의 방침을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뿐이며 이는 과학계와 언론계의 불문율이다.

본인도 2월 9일 오후 10시 51분에는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로부터 황 교수팀 논문과 보도자료, 각종 해설자료 등이 포함된 2월 13일자 사이언스 자료를 e-메일로 받았다는 점을 밝힌다.

우리 회사의 바이오 담당 기자도 중앙일보가 ‘특종’을 한 날 오전 이미 스트레이트와 해설까지 작성해놓은 상태였고 동아사이언스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사이언스가 어떤 언론사에도 따로 엠바고를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중앙일보가 사이언스로부터 엠바고 요청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엠바고를 어긴 게 아니라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중앙일보 기사에 사이언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면 온전한 특종으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엠바고 논란은 여기서 접자. 이번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엠바고 파기를 둘러싼 논란이 아니라 이로 인해 언론과 과학계 사이의 불신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인이야 무엇이 됐든 현재 과학계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상황이다. 훌륭한 연구를 해놓고도 과장, 왜곡보도를 우려해 취재에 응하지 않으려는 과학자들도 많다. 과학계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언론의 과학 홀대와 겹쳐 과학대중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과학대중화의 부진은 청소년 이공계 기피현상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정부와 기업 등이 이공계 살리기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과학대중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좋은 기회가 오히려 과학계와 언론 간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논란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과학계에는 언론에 더 정확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제공해 올바른 기사가 보도되도록 하는 계기가 돼야 하고 기자와 언론은 더 정확한 기사를 쓰기 위한 자기 계발과 함께 과학자들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들에게 지금도 우리 언론에는 과학을 아끼고, 정확한 보도를 위한 엠바고를 준수하면서 더 정확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이번 일로 언론에 대한 과학계의 불신이 깊어지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