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중앙일보 기사에 대해 연구팀이 국제적 엠바고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측은 엠바고라는 요청을 전혀 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는 12일자 1면 <장기 복제 길 한국인이 열었다> 기사에서 "국내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개가를 올렸다"며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12일 인터넷 속보를 통해 한국 연구진이 복제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사람 간 핵이식을 통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수의학) 등 14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최근 미국과학진흥학회(AAAS)와 함께 13일 오전 4시(미국시간 13일 오전 11시)에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발표를 한 뒤 기사를 게재하기로 돼있는 국제적 엠바고 사안이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요컨대 중앙일보에서 엠바고를 파기하고 앞서 보도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보도내용은 미국 '사이언스'지와 '미국과학진흥'(AAAS)에 의해 한국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까지 보도제한(엠바고)이 설정돼 있었는데 한국의 특정언론이 엠바고를 무시했다"며 "일부 언론이 아무런 확인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구내용을 보도함으로써 한국 과학계가 입게 될 국제적 위신추락과 난관봉착이 예상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같은 사전 보도제한 조치가 한국 과학기술의 업적에 대한 특별한 예우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의 이병천 교수는 12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지난해말 논문을 완성한 뒤 윤리·과학적 검증을 위해 AAAS에 제출한 뒤 AAAS측으로부터 '논문을 발표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며 "최근에는 '사이언스'측으로부터 게재했으면 한다는 통보를 받고 13일 새벽 사이언스가 마련한 특별기자회견(Special News Conference) 시점까지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와 매우 당혹스럽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과학자들로서는 일생일대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인데 답답하게 됐다"며 "일반적으로 사이언스는 논문이 외부 언론에 보도되면 게재하지 않는 게 방침이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중앙일보 기자가) 어떻게 내용을 입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언스에는 아직 자사 홈페이지에 띄우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국제적으로 앞으로 국내 과학자들이 기고할 때 신뢰에 큰 금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한 중앙일간지 과학담당 기자는 "당초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지에 커버스토리급 비중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일로 국내 기자가 해외 나가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과학기자협회도 국제적인 신뢰약속이 깨진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논평을 내는 한편, 중앙일보에 대해서도 강력 대응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사이언스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도 이날 황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기사 등을 통해 '한국의 언론보도 때문에 엠바고 시점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반드시 지켜야할 엠바고 사안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기사를 쓴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는 "국내 어느 기자든 기관이든 이 내용이 엠바고라고 정한 일이 없고, 다만 엠바고는 해외 언론에 대해 정한 것일 뿐"이라며 "중앙일보는 어디에서도 엠바고라고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홍 기자는 "다만 기사화가 됨으로써 해당 연구진이 당황스럽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하지만 국내 연구팀이 개가를 올린 것을 국내 언론이 발표 하루 전에 먼저 쓰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이 내용은 연구성과가 탁월해 사이언스지에 반드시 실릴 것"라고 말했다.

홍 기자는 하루 앞서 보도한 경위에 대해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나 팩트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보도했다'는 주장은 나와 중앙일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공식논문을 어제 입수했고, 이미 웬만한 교수는 다 알고 있어서 빨리 보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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