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언론인회에서 제정한 '서울대 언론인 대상' 시상식 날 상을 받은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가 "언론 간의 갈등의 전선이 형성돼있으며 권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시대가 와버렸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또 서울대 김재순 총동창회장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서울대 동문 언론인들이 헌정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이날 시상식장 밖에선 "서울대 출신 언론인들 한국언론 농락말라"며 피켓침묵시위를 벌였다.

관악언론인회(회장 안병훈)는 11일 오후 6시45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차 총회를 겸한 제1회 서울대 언론인 대상 시상식을 열었다.

시상식이 시작되기에 앞서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 관계자 10여 명은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입구에서 "서울대출신 언론인들 한국언론 농락말라" "조선 김대중 이사기자는 언론계를 떠나라" "서울대출신 언론인 양심이 부끄럽지 않소" "언론계 퇴출 1위에게 언론인 대상 왠말이냐" "서울대 부끄럽다 관악언론인 해체하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외부의 이같은 비판과 관련, 김대중 이사기자는 이날 만찬 중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른 언론인상은 거론하지 않으면서 서울대만 학벌(학연) 조장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공식적으로는 수상소감으로 대신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서울대 정운찬 총장,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SBS 윤세영 명예회장, 경인일보 이길녀 회장, 이상기 기자협회장, 연합뉴스 장영섭 사장, 한국경제신문 최준명 사장 등 전현직 언론사 사장 및 간부들을 비롯해 모두 2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앞서 이날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수상한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는 수상 소감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했으나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이 상을 고맙게 받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라며 "나의 경우 말과 글로써 각자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말과 글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 것같다. 심정적으로는 전쟁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서로 갈등과 대립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기자, 언론인이 뭘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며 "제가 신문기자로 퇴장하는 문턱에서 우리에게 말과 글이 서로 대화의 주된 수단으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 착잡할 뿐"이라고 말을 이었다.

   
김 기자는 "과연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내가 퇴장할 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는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다. 삿대질하고 패대기치고, 자신의 견해와 다르면 가차없이 부시는 상황, 이것을 극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를 하는 게 언론인데 지금 언론은 갈라져있다"며 "과거엔 정직한 언론은 권력과의 관계속에서 나왔으나 지금은 언론 간의 갈등의 전선이 형성돼있다. 권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시대가 와버렸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서울대 김재순 총동창회장은 서울대 출신이 이번 총선에서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회장은 이날 축배를 제안하면서 "지난해 1회 총회를 연 자리에서 우리는 동문들에게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제안한 바 있다"며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춤을 출지 모른다"고 밝혔다.

김회장은 "이 때 우리 동문들이 너무 흥분해서는 안된다. 사태에 대해 에너지를 발산하기 보다는 빛을 비춰달라"며 "다가오는 총선에 우리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헌정질서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날 참석한 한 관악언론인회 회원은 "서울대 출신 모임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준 것"이라며 "친목 이상의 의미 부여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회원은 서울대출신 언론인끼리 모여 학연을 조성할 우려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며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것같다. 그들의 시각이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회원은 김대중 이사기자의 '언론간 갈등론'에 대해 "언론과 권력, 언론과 언론간의 관계에 대해 김이사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대부분의 신문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 일변도였다. 언론사간 다양한 견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전선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원은 "이 자체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김이사 사고의 저변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시각이 짜여져 있는 것같다. 너무 보수신문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 것같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대중 이사 기자의 수상소감 요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했으나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상 중에 제일 좋은 상은 서로 잘 아는 프로들끼리 주는 상이다. 상을 그동안 많이 받았었지만 다 의미가 다르다. 같은 길을 걸러온 사람들이 주는 상, 같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던 사람들이 주는 상이 가장 좋은 상이다. 이 상이 내가 받아본 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왜 오늘 이 자리에 왔는지 잘 모르겠다. 첫째 오래 있다 보니까 현역으로 제가 제일 늙은 사람이 아니냐, 많은 동료 동문들은 대부분 은퇴하고 현역에 없다. 오래 있다보 니 돌아오는 게 있다.

또 하나 왜 이상이 도대체 나한테까지 오게 됐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그동안 내가 써온 방식으로) 어떠어떠한 글을 써온 기자에게 상을 주겠다는게 밑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이 상을 고맙게 받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들은 적어도 나의 경우 말과 글로써 각자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말과 글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 것같다. 심정적으로는 전쟁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 갈등과 대립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기자, 언론인이 뭘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지금 이 상황은 만족할 수 만은 없다.

제가 신문기자로 퇴장하는 문턱에서 우리에게 말과 글이 서로 대화의 주된 수단으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 착잡할 뿐이다.

사실 내가 기자 택한 것은 진부한 이유 때문이었다. '무관의 제왕' 때문에 시작했다. 특히 '왕'이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갖는 것을 말한다. 요즘 (일각에서는) 신문이 지나치게 영향력을 독점하려 한다고 야단을 친다. 하지만 원래 신문은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게 생리다. 그런데 왜 영향력을 가지려 하느냐고 하는지 모르겠다.

후배를 교육할 때 마다 '신문기자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돈하고 관련이 없다. 돈 생가하면 기자 그만둬라. 실제로 동료들 중 돈 벌러 나가 돈 많이 번 사람도 있다. 기자는 자기 실력과 노력만 있으면 어떤 아부와 비정상적인 것 없이도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다. 신문기자 택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왔다. 지금 내 자긍심과 자부가 과연 옳았던가 회의가 든다. 사실 너무 늦었다.

나는 내 자식과 며느리도 신문기자다. 기자의 길 택했을 때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들에게) 미안하다. 과연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내가 퇴장할 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는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다. 삿대질하고 패대기치고, 자신의 견해와 다르면 가차없이 부시는 상황, 이것을 극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를 하는 게 언론인데 지금 언론은 갈라져있다.

과거엔 정직한 언론은 권력과의 관계속에서 나왔다. 지금은 언론 간의 갈등의 전선이 형성돼있다. 권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시대가 와버렸다. 남산에 불려가서 자술서 써야하고, 물먹은 대장 들고 시청에 검영 받으러 다닌 적도 있다. 왜 옛날에 '만주의 비적대들이 돌아다닌다'라고 기사를 썼느냐면 '비적'이 독립군이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오늘날 이런 표현을 쓴 신문이 비판받는 세상이 되고 있다. 주제넘게 내 소회를 너무 많이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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