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를 모토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10개월이 지났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책의 하나가 바로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제 실시, 청와대·정부부처의 가판 구독금지 등으로 대표되는 언론정책이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 기조는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 유지”로 요약되지만 지난 8월 이병완 홍보수석 취임 이후 ‘불필요한 갈등관계는 지양하겠다’는 부분적인 유화책이 도입됐다. 지난 9월 이후 한달에 한번 정도 열리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정례회동,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청와대 만찬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청와대측은 그러나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언론정책 기조와 대언론관계에 본질적 변화는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청와대의 언론정책에 대해 언론계 일각에선 언론을 배제한 채 국민을 상대로 직접 정치를 하는 이른바 ‘미디어마케팅 정치’의 시작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기업이 제품 판매의 수단으로 광고를 이용하는 것처럼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리 인터뷰할 언론사를 직접 선택하고 필요할 경우 TV생중계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직접 대국민설득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노 대통령 취임 10개월을 맞아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언론계의 전반적인 평가와 방송계 현안으로 떠오른 디지털TV 전송방식 변경문제, 취임 초기 방송계 인사문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 재개정 등을 살펴봤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은 크게 모든 언론에 대한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룸 설치, 부처 사무실 출입금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6월2일 청와대 춘추관(기사송고실) 개방을 시작으로 9월1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0월1일 국방부 청사 등이 잇따라 기자실을 개방했고, 통합브리핑룸을 설치했다.

기자실 개방 등의 조치가 취해진 뒤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 취지와 국내 언론환경의 현실에 맞춰 연착륙했다기보다는 취재 불편, 브리핑의 부실, 기자와 취재원과의 갈등을 낳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 남대연 대변인이 국방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기자실 개방 이후=
기자실 개방 등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상징적인 출입처인 청와대 기자실의 경우 기자들은 브리핑제 실시 뒤 정보접근의 어려움으로 취재의 불편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올 초 처음으로 청와대에 출입하게 된 한 일간지 기자는 “브리핑제라는 게 기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의미 같다”며 “새로 출입하게 된 기자들은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과 오래 알고 있는 기자들마저 개별적인 취재가 되질 않아 청와대에서 ‘특종’이란 것은 불가능하고, 무슨 사건이 터지면 확인자체가 어려워 연합뉴스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애초 브리핑 자리에서 대변인뿐만 아니라 각 수석 보좌관들이 직접 나와 질의응답을 받기로 했으나 지난 8월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사건 이후부터는 브리핑을 하기 위해 나오는 수석들은 거의 없다는 게 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 때문에 ‘개방형 브리핑제’라는 취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 출입기자는 “양길승씨 사건 이후 청와대측의 자체적인 필요성에 의해 작정하고 브리핑하는 경우 외에는 수석들의 브리핑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파병 현안이 있을 때 외교안보라인에 누구도 브리핑룸에 나타나지 않았고,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경우 지금까지 브리핑룸에 한번도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일부 수석의 경우 아침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모든 얘기를 다해서 기자들이 라디오 프로를 인용해서 기사화하는 일도 더러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또 브리핑제 실시 이후 기자실의 출석률이 저조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기자는 “특별 기자회견 등 큰 사건이 없을 때 2층의 브리핑룸에는 309명의 등록 기자들 중 10명 안팎의 기자들만 상주하고 나머지 자리는 텅텅 비어있다”며 “이게 바로 기자실 개방 조치의 현주소”고 지적했다.

기자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불만사항 중 하나는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올 초 기자들과 술·밥을 먹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 기자들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는 “모 청와대 관계자와 친분관계가 있는 한 중앙일간지 기자가 지난 4∼5월께 술자리를 갖던 중 한 청와대 인사가 이를 보더니 ‘기자들하고 밥 먹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말해 그 기자가 무척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상당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과 이후 기자들과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아 기자들로부터 불만을 사왔다. 이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걸리면’ 크게 보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기자들에 대한 기피와 불신, 이해부족 등이 청와대 정책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꼬이게 된 근본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병완 홍보수석이 들어선 뒤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브리핑룸에 자주 모습을 보이고, 지난 9월부터는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는 기자들과 오찬을 갖고 있으며, 지난달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연쇄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청와대 안연길 춘추관장은 29일 오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취재관행이 변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고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있던 기자들의 불만과 저항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그동안 기자들에게 거부감을 느껴 필요 이상의 ‘긴장관계’를 가져온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관료들과 기자들의 접촉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 관장은 “현안이 있을 때 해당 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정보제공하는 기회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하지만 개각, 인사 등 내부 기밀을 특정 언론사에게 제공하는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종합청사·국방부의 경우= 지난 9월1일 426명의 기자등록을 받고 총리 브리핑실, 합동 브리핑실, 기사송고실 등을 갖춰 통합브리핑을 시작한 정부종합청사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장관이 나와서 하는 브리핑도 형식적일 뿐 실속이 없다. 전반적으로 충실한 브리핑이 되질 않고 있다”며 “사무실 출입이 제한돼 취재여건만 열악해졌다”고 지적했다.

새 청사로 이관한 뒤 지난 10월 기사송고실을 마련한 새 국방부도 기자들과 적잖은 마찰을 빚는 등 ‘부실한 브리핑’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까지 단 한차례만 장관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데다 그나마 브리핑마저도 현안에 대한 자세한 사전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기자들의 지적이다.

국정홍보처 정순균 차장은 “여전히 일부 부처에서 언론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점은 우리도 파악하고 있다”며 “연말을 맞아 각 부처 장차관, 실국장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브리핑에 임할 수 있도록 각 부처의 홍보마인드·대응·실적 등을 평가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차장은 “미·영 등 외국도 브리핑은 내용이 없다”며 “브리핑 내용 자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기자들도 취재시스템과 기사포맷을 심층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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