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표방한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 조성 원칙에 따라 정부 부처나 관공서가 언론에 제공하는 혜택은 다소 줄었지만 기업이 지원하는 ‘공짜’ 해외취재 관행은 여전하다. 또 과도한 술자리 향응 등 잘못된 관행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주식시장의 작전세력과 결탁한 범죄수준의 언론인 비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짜 해외취재= 해외취재 지원의 경우 2003년 한 해 본지가 보도한 사례만 모아도 대기업·경제단체의 해외출장 지원 9건, 언론재단·원자력문화재단 등 언론유관기관이나 공공단체 지원 7건 등 모두 16건에 이른다.
일례로 은행연합회는 지난 3월3일∼8일 ‘동남아 현지은행 시찰’ 명목으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25명의 기자들을 데리고 해외출장에 나섰으며, 생명보험업협회는 같은 달 10일∼14일 ‘동남아산업 보험실태’를 주제로 필리핀에서 열린 세미나에 11명의 기자를 데려갔다.

지난 4월7일∼13일 삼성테스코는 유럽 선진국 유통업계 실태 견학 명목으로 유통담당 기자 18명을 동반하고 영국 런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다녀왔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핵폐기장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을 데리고 잇따라 해외취재를 다녀와 눈총을 샀다. 환경부 기자 20여명(6월29일∼7월2일), YTN·전주방송·문화일보 기자(6월 중순), 전북지역 기자들과(5월 중 3박4일) 군산지역 일부기자(7월초)들이 원자력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핵폐기장이 위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에 다녀왔다.

언론재단은 ‘외유성 취재 지원’이라는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여러 차례 해외취재를 지원했다. 특히 국제부장단 18명이 동행한 지난 7월6일∼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관계와 언론’ 세미나는 출장비용의 90%를 주한미대사관이 부담하고 언론재단이 나머지 10%를 지원해 ‘친미 언론인 양성코스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범죄형 비리·과도한 향응= 2003년에도 어김없이 범죄형 언론 비리사건이 터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3일 매일경제TV의 장모 전 PD와 안모 사이버 증권분석가 등을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매일경제TV <고수들의 투자여행>이라는 증권 프로그램에 제작자와 증권 분석가로 참여하면서 사설펀드를 조성한 뒤 허위로 특정 종목을 추천하고 주가가 오르면 이를 되팔아 9억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밖에 KBS <TV 책을 말하다>의 PD 한 명이 지난 7월 취재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본을 방문하면서 가족을 동반해 물의를 빚은 끝에 해임됐다. 제작진과 동행했던 한 교수가 인터넷에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방송사의 해외출장에 가족을 동반했다’는 글을 지역신문에 게재하면서 불거진 이 사건으로 담당 CP와 제작본부장이 각각 3개월과 1개월 감봉조치를 받았다.

술자리 향응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와 SBS 윤세영 회장이 지난 5월22일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같은 날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언론사 한나라당 반장들과 호화술자리를 가졌다.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조직위도 지난 8월 말 북한 기자단과 보수단체가 충돌사태를 빚은 다음 날인 25일 문화일보 기자들과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L룸살롱에서 술접대를 했다.

△허울뿐인 언론사 윤리강령= KBS는 가족동반 해외출장으로 물의를 빚은 PD를 해임하면서  3만원 이상의 향응과 공무로 생긴 항공 마일리지의 개인 사용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윤리강령을 선포하고,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MBC도 지난 7월7일 언론사로는 유일하게 기업 등에서 지원하는 공짜 해외출장·연수·취재를 전면 금지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도 SBS,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매일경제, 한국경제, 스포츠조선, 부산일보, 대전일보, 국제신문 등 대다수 언론사들이 윤리강령이나 기자준칙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실효성과 강제력 면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일선 기자는 “윤리강령이 실효를 거두려면 위반사례를 적발하고 상응하는 징계를 내리는 상시 기구를 언론사마다 가동해야 한다”며 “이런 장치 마련을 위해 기자 사회 내부에서 자정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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