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비보도(오프더레코드) 약속을 깨고 개각 소식을 보도했다며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청와대쪽에 건의해 1주일 출입정지 징계 결정을 내린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8일자에 <연말 組閣수준 개각 가능성…高총리 "물러날 각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개각에 앞서 고건(高建) 총리가 국정쇄신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자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밝힌 사실이 알려져 내각 개편의 폭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라며 △재정경제부의 경제부총리 후보 청와대 보고 △교육부총리 산업자원부 장관 교체여론 △정부 내의 총선 징발 가능성 등을 함께 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이날 회의를 열어 “문제의 기사는 지난 16일 노 대통령과 간담회 때 개각 부분은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고 징계를 건의하기로 했다. 청와대 중앙일간지 대표 운영위원인 연합뉴스의 조복래 기자는 "이날 회의에서 과연 이 기사가 오프더레코드를 깼다고 볼 수 있는지 이견이 있었지만 투표 결과 압도적 다수가 '대통령과의 신의원칙에 배반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일 청와대 춘추관은 중앙일간지·중앙방송사·지방일간지·카메라(신문)·ENG카메라(방송) 기자 대표 각 1명씩이 운영위원으로 참석한 춘추관 운영위원회를 열어 제재키로 공식 방침을 정한 뒤, 2일 동아일보 출입기자 2명에 청와대 출입정지 1주일(5일∼11일)의 징계를 내렸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이런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간담회서 말한 것을 인용한 것도 아니고 별도로 취재해 기사화한 것인데 오프를 깼다고 볼 수 없고 △기자들끼리 정한 약속을 청와대가 너무 쉽게 용인했으며 △기자단이라는 게 사실상 폐지됐는데 과거처럼 기자들끼리 기사화 여부를 결정하는 담합행위를 재연시키는데 청와대까지 함께 용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과의 간담회 때는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개각과 관련,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연말에 개각을 하긴 한다. 국정쇄신 주장에 동의하진 않지만 연말에 평가도 하고 총선수요도 있고 해서... 총리는 총선 때까지 가야죠.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본인 뜻이 아니라고 해서"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간담회 말미에 '개각은 오프입니다'라고 말했다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기자단은 이날 노 대통령과의 간담회 내용 모두를 포괄적 엠바고로 정했다.

연합뉴스 조복래 기자는 "엠바고를 합의하는 회의를 열지는 않았지만 간담회 이후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모든 언론사에 보냈고, 복사 등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자료에 해당 언론사 명을 일일이 기록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자들의 주장은 이와는 좀 다르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동아일보 김정훈 기자는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개각과 관련한 모든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대략적인 윤곽만을 말했다. 고건 총리 발언이나 나머지 얘기 모두 우리가 나름대로 취재해서 쓴 것"이라며 "엠바고로 정한 것 자체부터 타당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김 기자는 "청와대가 기자단의 폐해를 개선키 위해 기자단을 폐지하고 기자실을 개방해놓고 과거처럼 기자들이 편의적으로 결정한 사항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며 "청와대 시스템 개선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춘추관 관계자는 "동아일보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300여명의 기자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운영위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으면 춘추관(청와대 기자실) 운영이 쉽지 않다"며 "전적으로 (기자 대표로 구성된) 운영위 의견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복래 기자는 "간담회 때 노 대통령 발언을 듣고 바로 기사를 쓰겠다고 한 신문도 일부 있었지만 조만간 회의를 열어 적절한 시기에 함께 쓰려고 했는데 동아일보가 먼저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 춘추관은 지난 3월 기자실 개방과 함께 출입기자실 운영규정을 만든 뒤 두 차례 부분 개정을 거쳐 지난달 12일 전면개정을 했다. 새 개정안은 출입기자 대표들의 의견을 반영해 춘추관의 운영에 관한 결정을 하도록 했다.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동아일보 보도가 나온 뒤에도 지난 7일까지 개각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국민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언급한 개각관련 내용이 보도되자 지난 7일 회의를 열어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국민일보도 당초 15주년 기념일인 10일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려 했으나 기자들의 결정에 따라 앞당겨 보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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