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가 장기화될 것 같다. 고생하는 기자들에게 미안하다."

대검찰청 안대희 중수부장이 지난 3일 대기업에 대한 전면수사 방침을 발표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대검 국민수 공보관은 6일 "검찰 수사와 기자들의 취재는 늘 함께 간다"며 안 중수부장이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안쓰럽지만 같이 고생하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분주한 대검기자실 ⓒ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안 중수부장의 말마따나 요즘 대검 출입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사로 쉴 날이 없다.

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던 3일부터 대검 기자실은 최근 몇 년 새 보기 드물게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신문의 경우 대검 출입기자를 1명에서 3명으로, 방송은 4명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대검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현재 80여 명으로 늘었다. 평상시에 대검에 등록된 출입기자는 모두 25명(언론사당 1명 씩).

대검 기자실 공간이 비좁아져 지난 5일엔 추가로 책상과 의자 15개를 들여놓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있는 브리핑 때는 적어도 40∼50명의 기자가 몰려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지난해 김홍업 씨의 구속을 불렀던 이용호 게이트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게 기자들의 말이다.

연합뉴스 고웅석 기자(대검 출입기자단 간사)는 "원래 대검 기자실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설 때만 바쁜 편이었다. 때문에 서울지검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출입처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검찰 인사파동, 나라종금 수사, 대북송금 수사 마무리가 비슷한 시기에 겹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그 뒤 좀 쉴만하니까 7월 말에 현대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의 중노동이 다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고기자의 말대로 대검 출입기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시기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사건부터다. 고 정회장의 자살이 있기 전, 즉 현대비자금 사건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검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기자들에게 "고생 많았으니 이제 휴가나 다녀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월 4일 고 정몽헌 회장이 자살을 계기로 그동안 검찰이 정회장을 세차례 소환한 것을 포함해 주요 인물들을 계속 소환해왔다는 것이 드러나자 기자들의 '살인적인' 취재경쟁이 시작됐다.

한 대검출입기자는 "집에 있는 7∼8시간 외에는 늘 기자실에 있었다"며 "이 때문에 네 차례나 여름휴가를 연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일과도 훨씬 빡빡해졌다. 대체로 8시 이전에 도착해 검찰총장과 수사기획관이 출근하는 것을 체크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 뒤 소환자가 누구인지 체크하고, 중수부의 브리핑을 점검하는 한편 수사진행상황에 대한 정당과 기업의 반응 등을 살핀다. 이러다보면 밤 10시∼12시쯤에야 퇴근한다.

기사량도 늘었다. 조선일보의 한 출입기자는 "매일 1면 스트레이트 기사와 주요박스기사 1∼2개를 준비해야 한다"며 "수사가 장기화된다는 말에 기자들은 앞이 캄캄하다는 반응들이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한 출입기자는 "현대비자금 사건, SK비자금 사건 등에 대한 수사가 숨가쁘게 진행돼 이를 쫓는 기자들은 매우 지쳐 있다"며 "피로가 누적됐을 뿐 아니라 이제는 지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떤 기자는 "검찰이 연내까지 끝내겠다고 하니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번 수사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웅석 기자는 "피로가 누적될대로 누적된 상태지만 이번 수사가 단순한 개인비리 차원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전환점이자 거대한 여론의 소용돌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취재하는데 사명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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