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선 비자금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진화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진화작업에 나서게 된 발단은 지난달 31일 검찰이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실에 라면·A4용지 박스는 물론 캐비닛에까지 현금을 담아뒀다는 내용을 적시한 이재현 씨 구속영장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연합뉴스는 이날 <한나라, SK외 거액 대선자금 수수 포착> 기사에서 "검찰은 이재현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에게서 'SK 100억원'을 쌓아둔 재정위원장 사무실에 수백원원대로 보이는 다른 현금이 함께 보관돼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또 <대선직전 한나라 재정위원장 '최대 1000억 보관'>이라는 박스기사에서 "돈다발이 공간에 꽉 찬다고 가정했을 때 이 돈은 1300억여원"이라며 "한나라당 당사에서는 최대 1300억원에 이르는 괴자금이 쌓여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나라당 재정국 사무실에서 본 돈더미는 1000억원을 훌쩍 웃돌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밖에도 경향신문 국민일보 한국일보 한겨레도 1일자에 '검찰이 한나라당의 수백원대 수수의혹을 포착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한나라당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수백억원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며 지난달 31일 오후부터 연합뉴스와 일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가급적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저녁 때는 별도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수백억 수수' 의혹을 재차 부인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1일과 2일에도 이재오 사무총장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내세워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A언론사 한나라당 반장은 "한나라당 대변인실 행정실에서 전화를 걸어 '카더라 통신으로 무책임한 기사를 쓰면 제소하겠다' '검찰이 조서내용까지 흘린 것이다' '가급적 기사쓰지 말아달라'고 전화해 압박을 가했다"며 "일부 신문들도 전화를 받고 기사의 톤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연합뉴스는 지난 2일 아침 이례적으로 <'한나라당, SK외 대선자금 수수의혹 관련'>이라는 사과문 형태의 '알림'을 게재했다. 연합뉴스는 "'수백억원대로 보이는' '이돈은 300억여원' '최대 1300억원에 이르는 괴자금' '1000억원을 훌쩍 웃돌 것으로 보인다' 등의 내용은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자금수수 규모를 추정보도한 것으로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의 명예와 신뢰감을 실추시킨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측은 "4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수백억원대 수수'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의 수위를 조절한 뒤 오전에 브리핑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강도 높은 대응에 대해 B언론사 한나라당 출입기자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앞서간 측면도 있지만 SK 이외의 기업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까지 수사한다고 하니 겉잡을 수 없이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해 강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자신들이 뚜렷한 근거없이 부풀리기해온 점을 반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C언론사 대검 출입기자는 "노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문제삼으면서 언론이 구속영장을 토대로, 단정적인 보도도 아니고 가능성을 제기한 기사를 놓고 민·형사 소송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건평 의혹제기나 홍준표 의원의 최도술 300억설도 뚜렷한 증거를 내지 못하면서 면책특권을 무기로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사실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수사결과를 지켜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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