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지난 99년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 중에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세무조사 항의성 요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종찬 전 원장은 지난 14일 저녁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99년 7월 2일 중앙일보 홍석현 당시 사장이 롯데호텔 지하 일식당으로 날 초청해 ‘지금 세무사찰을 받고 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계속 이러면 정부와 정면대결할 수밖에 없다’며 격렬한 어조로 항의성 요청을 했다”며 “그래서 사태 수습을 위해 홍 사장에게 ‘알아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전 원장은 이어 “다음 날인 7월 3일 저녁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만나 ‘언론은 자율적으로 정화돼야지 통제하거나 외부압력을 가하면 안 된다. 80년대 언론통폐합 때처럼 생각하면 착각이다.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고 전했다”며 “김 총리는 ‘그러면 안된다. 수습하겠다’고 해서 내가 중앙일보에 수습하겠다는 뜻을 알려도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원장은 이에 따라 김 총리 면담 이틀 뒤인 7월 5일 홍석현 사장에게 김 총리와의 면담내용을 통보해줬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홍 사장의 발언이 ‘로비 목적이었느냐’는 질문에 “로비보다는 항의성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말을 김대중 당시 대통령께 전달해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라며 “나중에 알고보니 김 총리가 며칠 뒤 김 대통령께 ‘중앙일보 사찰은 지나치다. 수습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세무조사가 강행돼 홍 사장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고 덧붙였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방안 등을 담아 99년 파문을 일으켰던 언론대책 문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이 전 원장은 “(문건 작성자인) 문일현 기자로부터 세무조사 전에 문건을 받았다면 홍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무슨 소리냐. 당신 직원도 사찰하라는데’ 라든지 ‘젊은 기자들이 세무조사하라고 얘기하는데 몰랐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난 99년 6월 23일 사무실로 온 팩스를 읽지 않았고, 문건 작성도 세무조사 기간 중에 이뤄진 것이어서 시기적 인과관계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전 원장은 앞서 13일 이강래 전 대통령 정무수석과 자신이 ‘언론대책 문건’ 작성을 주도했다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의 1심 공판에서 증인신분으로 이같은 진술을 하기도 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7월과 8월 출두요청을 받고도 나가지 않다가 정형근 씨의 주장이 허무맹랑함을 입증하고, ‘한건주의’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주의’ ‘선동정치’가 나라를 좀먹고 있는 최근 정치현실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법정에 출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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