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협회 창립기념식에서 홍석현 신문협회장이 "정부와 방송매체로부터의 비판, 일부 시민단체의 움직임, 신문업계 내의 분열상이 신문의 신뢰에 상처를 주고 있다"며 "비판적 독자층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이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13일 오후 3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협회 창립 41주년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협회장인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불참했다.

홍석현 회장이 해외 출장으로 불참해 이날 기념사는 장대환 부회장(매일경제 사장)이 대독했다. 이 내용도 홍석현 회장이 직접 작성하지 않고 신문협회 사무국에서 작성하고 매일경제 장대환 부회장의 감수를 거쳐 마련됐다.

홍 회장은 "우리가 당면한 우리만이 겪고 있는 더 심각한 위기는 신뢰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다. 정부와 방송매체의 신문에 대한 잇단 비판, 여기에 가세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움직임, 신문업계 내의 분열상 등은 신문에 대한 일반의 신뢰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 있다"며 "신문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독자층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판적 독자층은 무시할 수 없는 시민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무엇인지 열린 가슴으로 살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문이 이른바 사회적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특히 이라크 파병문제와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해 "또 한차례 갈등국면을 맞고 있다"며 "합리성과 상식, 그리고 다수 시민의 건전한 정서가 바탕이 된 균형점을 제시하는 일에 언론은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홍 회장은 일부 언론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평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단어 사용이나 특정 언론에 대한 취재 거부 등은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정부와 언론은 국가발전을 위한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홍 회장이 신문의 신뢰위기론을 강조한 데 대해 신문협회 관계자는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젊은 세대 독자층이 계속 떨어져나가고 있는 데 대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 이재국 신문개혁위원장은 "광고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예전과 달리 방송사의 신문 비판이 잦아지는 등 체감 위기가 극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갈등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니겠느냐"며 "이같은 기념사 내용은 오히려 늘 해오던 원론적인 수준의 얘기"라고 말했다.

홍석현 회장은 앞서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와 미주 중앙일보의 광고주 설명회 참석차 해외 출장중이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미주 중앙일보의 광고주도 중요하기 때문에 송필호 대표와 이장규 편집국장을 대동해 미국 교포사회 광고주들에게 중앙일보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설명회를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신문협회 기념식이 열린 20층에서는 행사에 앞서 30여 분간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 관계자들이 스포츠조선의 노조 탄압과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열었다.

언론노조는 이어 이같은 내용을 서울시민에게도 알리기 위해 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시의회를 거쳐 조선일보까지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는 대치하고 있던 경찰과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신문협회가 발표한 창립 기념사 원문이다.


신문협회 41주년 기념사

존경하는 신문인 여러분!

오늘은 우리 한국신문협회가 또 한 줄의 연륜을 긋는 날입니다. 근년 들어 협회 창립기념일은 축하보다는 자성과 다짐의 날이 되어 왔습니다. 그만큼 우리 신문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신문산업이 당면한 현실이 험난하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상황 역시 어둡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말합니다. 

사실 우리 신문산업은 지금 외환위기 사태 때와 유사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광고수입의 감소, 젊은 세대의 신문이탈 현상, 동업사간 또는 타 매체와의 이전투구식 과당경쟁 등으로 신문경영은 그야말로 혹독한 시련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측면의 위기는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 선진국들도 같은 시련을 맞아 생존전략 마련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그리고 우리만이 겪고 있는 더 심각한 위기는 경영측면보다는 신뢰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정부와 방송매체의 신문에 대한 잇단 비판, 여기에 가세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움직임, 신문업계 내의 분열상 등은 신문에 대한 일반의 신뢰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경영위기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문인 여러분!

우리의 현실은 이처럼 우울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합시다. 우리에겐 문제만을 바라보고 있을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문제들은 아무도 대신 풀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단합하고 지혜를 짜내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신문이 신뢰를 얻는 데는 왕도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독자를 두려워하며 언론의 정도를 가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신문을 신뢰하는 두터운 독자층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 독자층에 우리는 더 충실한 정보와 고품격의 담론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신문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일부 독자층에게도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비판적 독자층은 무시할 수 없는 시민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무엇인지 열린 가슴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문이 이른바 '사회적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이라크 파병문제와 한 재독학자의 친북행적 문제 등으로 또 한 차례 갈등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언론의 사회적 균형추 기능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더욱 더 절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합리성과 상식, 그리고 다수 시민의 건전한 정서가 바탕이 된 균형점을 제시하는 일에 언론은 더욱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언론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평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단어 사용이나 특정 언론에 대한 취재 거부등은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국가발전을 위한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신문인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2005년 세계신문협회 연차총회를 유치해 놓고 있습니다. 1천명이상의 세계 유력 신문인들이 참가하는 이 총회는 우리 신문산업이 새로운 모습으로 비상할 기회입니다. 서울 총회를 통해 우리는 세계적인 종이신문의 위기상황에서 각국의 유력지들은 어떠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울에 오는 세계의 신문인들에게 자랑스런 한국언론의 역사와 비전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우리 신문협회도 신문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합니다. 우선 내년부터 4월7일 신문의 날을 전후한 1주간을 '신문주간'으로 선포해 신문홍보와 신문활용교육(NIE) 관련 사업들을 집중 시행 할 계획입니다.

NIE 캠페인은 신문주간 뿐 아니라 방학 중이나 한글날 등을 계기로 연중 사업으로 실시하여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부와 긴밀한 연계를 맺고, 내년중에 NIE 한국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련인력을 양성하고 세계신문협회의 NIE위원회와도 교류를 추진할 것입니다.

또한 매년 서울에서 개최하던 신문의 날 대회를 내년부터는 지방 대도시에서 순회 개최하여 지방언론의 활성화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독자만을 바라보고 언론의 본령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독자들로부터 위임받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항상 자신에게 엄격하고 외적으로도 경계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협회창립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해 주신 내빈들께 감사드리며, 한국신문상과 신문협회상 수상자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10월 13일 

                       한국신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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