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사진 )씨에 대한 '변칙상속' 의혹과 관련, 검찰이 추석 이후 당시 삼성그룹의 관련 임원을 소환, 조사했다고 MBC <뉴스데스크>가 28일 단독 보도해 검찰 수사방향과 삼성그룹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9일자 한겨레, 대한매일, 한국일보, 세계일보, 국민일보 등은 관련기사를 배달판에 추가했으며, 국민일보의 경우 1면 사이드톱으로 보도했다. 각 신문들은 그러나 <삼성 이재용씨 편법상속 의혹관련 전 구조본 직원 5∼6명 조사>(한겨레), <'CB 저가발행'관련 전 삼성직원 4∼5명 소환>(대한매일), <삼성 전 구조본 직원 3, 4명 소환>(한국일보) 등 제목과 내용에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조중동만 외면한 삼성 '변칙상속'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신문들과 달리 29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삼성그룹의 '변칙상속의혹' 관련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지 취재결과, 조중동은 법조팀에서 기사를 출고하긴 했으나 기사가치가 낮다는 판단으로 기사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일보 법조담당 기자는 "MBC <뉴스데스크>를 본 뒤 확인작업에 들어가 기사출고는 했다. 서울지검장과 접촉해보니 '12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돼 자료협조 차원에서 당시 구조조정본부 실무자들을 불러 조사한 정도'라는 말을 듣고 간단히 처리했다"며 "그러나 그다지 기사가치가 크진 않았다고 본다. 새로운 팩트가 없어서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한 1∼2단 크기 정도가 적당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편집국 중견기자는 "MBC에서 나온 것을 보고 법조팀이 밤새 확인해서 기사를 보내오긴 했다. 이를 두고 '기사가 되냐 안되냐' 고민하다 이미 2주전에 연합에 나왔던 얘기라는 판단을 하고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중견기자는 "이미 연합에 2주전에 '이건희 이재용 소환하겠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바 있고, 추가로 혐의가 드러나거나 수사가 진척된 것이 아니어서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법조팀에서 기사를 출고했지만 보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지검 출입기자들 MBC보도로 '물먹었다'

그러나 조중동 법조 출입기자들의 말과 달리 관련 보도를 내보낸 기자들은 MBC 보도 직후 관련 내용을 급해 확인하느라 심야에 검찰 관계자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거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지검 출입기자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MBC보도 때문에 '물먹었다'는 것이다.

서울지검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MBC에서 보도가 나간 뒤 검찰쪽 관계자에게 사실 관계에 대한 여부를 문의했다. 검찰쪽에서는 일단 전직 구조본 직원들을 자료협조차원에서 불러 조사했으며 현직 임직원은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검찰측은 현직 임직원이나 이재용씨를 소환·조사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야 한다면서 현재 이들을 소환해 조사하기란 증거가 불충분하며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다른 출입기자는 "사실상 서울지검 특수2부가 굿모닝 시티 관련 조사에도 꽤 많은 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현재 이와 관련 타 부서의 외부 검사를 2명이나 수혈 받아 수사를 하는 만큼 현재 이재용씨를 수사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사를 진척시키기 위해 자료제출을 하고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첫 소환조사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그렇지만 검찰의 소환조사가 무혐의로 갈지 아니면 이재용씨 소환조사를 통해 특가법 적용이라는 강수로 갈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망했다.

관련기사를 보도한 MBC 박준우 기자는 "뉴스가 나간 후 몇 개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보도확인 전화를 받았다"며 "열흘 전쯤 연합뉴스에 검찰소환에 관한 보도가 나가고 나서 검찰이 브리핑이 있었으며 이를 기초로 취재해 일부 임원과 주주 등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번 검찰조사는 기초조사로서 삼성측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료제출과 간단한 질문이 오고 갔던 점은 검찰 관계자로부터 확인했고 나머지 수사일정과 계획은 그 전에 취재했던 내용을 보강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박 기자는 그러나 "검찰의 소환조사가 특가법 적용여부를 두고 무혐의로 갈지 아니면 본격적인 수사로 갈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삼성, 검찰수사 방향에 촉각 곤두세워

삼성 구조본측은 이재용씨 상속증여 문제가 해당 임직원들에게 해당하는 문제인 만큼 구조본 자체와는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향후 검찰 수사 진척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용씨의 변칙상속 의혹이 이슈화될 경우 삼성그룹의 실질적 후계자인 재용씨의 입지가 급격히 위축될 것은 물론 삼성그룹의 대외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본의 한 고위관계자는 "MBC가 보도한대로 이재용씨 변칙증여와 관련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현 구조본 관계자들이 소환 조사받은 적은 없고 전직 관련자들이 자료제출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돼 간단한 질의가 오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부터 수사 검사들이 필요하면 자료제출을 요구하거나 관련자들을 부르곤 했다"며 "검사들이 바뀌거나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자료제출을 쉴새없이 검찰측에서 요구한 만큼 검찰의 본격적인 소환조사라고 봐야 할지 그 의미가 정확치 않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검찰의 삼성그룹 관계자 소환조사가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또 "MBC 보도에서 이번 문제를 SK와 비교하는데 여러 가지면에서 확연히 틀리며 SK 분식회계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였던 비상장 주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치평가기준은 어떻게 볼 것인가가 논란이 있었던 만큼 이재용씨 문제도 여기에 걸려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구조본의 다른 관계자는 "특정인이 CB 증여 문제 때문에 이사회 결정이 잘못된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는데 이는 당시 에버랜드 이사진이나 해당 담당자들을 소환해야지 현 구조본 관계자들을 소환조사 할 것이라는 보도는 이해가 안 간다"며 "아마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면 그룹 내에서 미리 조치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MBC는 28일 <뉴스데스크>의 <삼성 '변칙상속' 관계자 본격수사>란 기사에서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 씨의 변칙상속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며 "소환조사를 받은 삼성 임직원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통해 변칙상속이 이루어졌던 지난 96년 말과 97년 초에 걸쳐서 삼성그룹 비서실에 근무했던 핵심 관계자 5, 6명"이라고 보도했다.

MBC는 또 "검찰은 또 조만간 당시 변칙상속 과정을 총괄했던 K 모 이사를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K 이사를 상대로 이건희 회장과 아들 재용 씨의 관여 여부를 집중 조사할 예정"이라며 "검찰은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핵심 관련자들에 대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려놓고 사법처리 범위와 시기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에 대한 검토를 끝낸 데 이어 관련 임직원들을 잇따라 소환, 조사함으로써 검찰 수사는 이제 그룹 최고위층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MBC 보도는 지난 10일 연합뉴스가 검찰이 삼성 '변칙상속' 사건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조현호 기자'문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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