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보도에 항의하던 '국민의 힘' 회원들과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 일행이 출동하는 과정에서 가스총이 발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의 '노무현 대통령 비판 만평'과 조 사장의 '독재정권 타도' 글에 항의하던 '국민의 힘' 회원들과 조 사장, 서정갑 예비역 대령연합회장 등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서 회장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스총 공포탄을 한발 발사했다.

이 사건을 두고 양 당사자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며 가스총 발사 경위 및 폭행 여부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두 당사자의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서정갑 예비역대령연합회장

-현장에 왜갔나.
"조갑제 사장과 점심약속이 있어서 식사하러 들어가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60∼70명이 조 사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욕설을 했다. 지켜보던 내가 '아버지뻘인 어른에게 무슨 행패냐'며 만류했더니 나에게도 달려들었다. 백주대낮에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멱살잡고 덤비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아니라 제3자가 그 광경을 지켜봐도 가만히 안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언론에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60∼70명이 달려들어서 멱살잡고 각목도 휘둘렀다."

-각목은 없었다는 게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 얘긴데.
"어제 진단서를 끊었는데 3주 나왔다. 스티로폴로 맞았다면 3주가 나올 리가 있느냐. 오른손 기브스 한 것 사진도 다 찍어뒀다."

-당시 젊은이들이 왜 현장에 왔는지는 알고 있었나.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월간조선 조 사장과 조선일보를 규탄하기 위해 시위를 하러 온 것이라고 들었다. 명계남 대표가 노 대통령과 친하다고 경찰도 수수방관했다. "

-총은 왜 쐈나.
"신변의 위협을 느껴 발사한 것이다. 세상에 60∼70명의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양복까지 다 찢어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내가 월남전쟁에 참전해서 아는데 당시는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총을 안 쐈다면 조사장과 나는 백주대낮에 그 자리에 쓰러졌을 것이다."

-총은 왜 들고 있었나.
"북한이 지난 해 5월18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으로 나를 가장 악질적인 반통일 세력으로 지목했고, 같은 달 20일에도 민민전 대변인 성명에서 같은 내용으로 날 위협했다. 내가 신변의 불안을 계속 호소하니 공안당국에서 '우리가 신변보호를 해줄 수 없으니 당신이 알아서 보호하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40∼50만원이나 주고 산 것이다. 허가번호도 있고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총을 쏠 생각했을 때 주변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없었나.
"그런 질문에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진단서 끊은 것을 근거로 경찰에 고소할 것이다. 국민의 힘과 시위 참여자들은 패륜아, 인간쓰레기들이다. 홍위병도 아니고…. 자기와 의사가 틀리면 말로 해야 서로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위 참여자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번에는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조갑제 사장과는 어떤 사이인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왔다. 조 사장 취재에도 도움을 많이 주고 받은 사이였다."

-이번 사건에 대한 조 사장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조 사장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형철 사무국장

-왜 시위를 열었나.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이 지난달 2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친북 비호' 독재정권 타도는 합헌>이라는 글과, 지난달 2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신경무 화백의 만평이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조선일보에 대한 모니터를 해오고 있는데 최근 들어 지나치게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회원들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조 사장의 글과 신 화백의 만평에 항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집회를 열게 됐다. 회원들로부터 제안도 많았다. 조 사장의 글은 거의 쿠데타를 선동하는 글이었고, 신 화백의 만평은 지나치게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집회 계획은 어떤 것이었나.
"피케시위와 거리선전전 정도와 함께 조선일보 당사자들과의 면담신청이었다."

-면담결과는.
"피켓시위가 오전 10시쯤 시작됐고, 곧 면담신청을 해 10시20분쯤 면담이 성사됐다. 면담 자리에는 국민의 힘측에서 이경섭 공동대표와 이상호 정치개혁위원장, 심화섭 경기대표가, 조선일보측에서는 당직을 보던 기자와 사회부 차장이 참석했다. '만평과 조갑제 사장의 글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했더니 조선일보측에서는 오히려 '국민들은 만평이나 글을 통쾌해한다.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 '신 화백, 조 사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직접 면담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거부해 면담이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조갑제 사장·서정갑 회장과의 충돌이 빚어진 과정은.
"면담 후에 조선일보 별관시위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는데 조 사장과 서 회장 등 일행 4∼5명이 코리아나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일부 회원들이 우연히 보게 됐다. 우발적이었다. 조 사장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우리 회원들은 조 사장측 일행에게 다가가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느냐'며 격렬하게 따졌다. 조 사장측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서로 격한 대화만 오고 가다가 말다툼과 몸싸움이 커지자 뒤에서 그 광경을 보던 회원들이 합류하게 됐다. 경찰, 조 사장 일행, 회원들이 함께 뒤섞인 가운데 갑자기 서 회장이 총을 쐈다."

-총 쐈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
"바로 회원들과 붙어있는 상황에서 총을 쐈고, 나 역시 2m 이내에 있었다. 그 총이 가스총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도 있는데 총을 쏜 행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회원들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특히 최근 극우집단의 폭력사건이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 충격은 더 했다."

-왜 총을 쏜 것 같나.
"본인이 위협을 느꼈다기 보다는 우리에게 위협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총을 쏜 뒤 경찰이 회원들과 조 사장 일행을 떼놓았는데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빨갱이' 운운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서 회장은 각목으로 맞는 등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플랭카드 손잡이가 각목으로 만들어져있긴 하나 이를 들고 있던 회원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조 사장과의 접촉 때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조 사장측과 옥신각신하던 장면을 다 녹화해뒀다.

화면에 우리가 폭행하는 장면은 없다. 각목이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폭행한 일은 절대 없다. 그리고 서로 몸싸움하다 밀고 밀리는 과정이었지 일방적인 폭행상황은 맹세코 없었다."

-이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같은 불상사가 또다시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조선일보의 반민족, 반국가적 분열 조장 보도에 대한 항의는 계속하면서도 집회에서의 표현은 보다 유쾌하게 할 생각이다.

오는 2일 다시 시위를 열 계획이며 왜 우리가 이같은 항의를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국민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날 우발적으로 발생한 충돌은 에피소드 정도로 넘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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