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이념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분열상태로 접어드는 걸까? 현상만 놓고 보면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8.15 광복절를 비롯한 각종 기념에서의 보수와 진보 단체가 근접거리에서 각각 집회를 연 점이 그렇고, 북한 인공기 훼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두고 단체마다 다른 목소리를 낸 점도 그렇다. 또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보수단체와 북한 기자단 간의 충돌을 바라보는 사회 내 시각도 둘로 갈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보혁대결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신문도 있다.

동아일보는 26일자 4면 <보혁갈등에 온나라가 "내편-네편">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반비례하며 보수와 진보세력 간에 빚어지고 있는 이른바 '남남갈등'은 국론 분열로 느껴질 정도로 골이 깊어지고 있다"며 보수단체들의 3.1절, 광복절 집회와 인공기 소각과 관련한 노대통령의 유감 발언에 대한 성명 등을 예로 들었다.

본격적인 보혁갈등 아니다

동아일보의 진단대로 한국사회는 이념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대다수 기자들은 이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현상적으로는 보혁갈등 측면이 나타나는 것이 맞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수와 혁신의 갈등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의 한 고위간부는 "현 정부 들어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동안 잠복해있던 보수 집단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이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도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인 바탕에 선 상태에서 갈등하고 있는 구조가 아니며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까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만큼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보혁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보수집단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맞다"고 주장했다.

비록 보혁갈등이 본격화되는 국면은 아니지만 그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상당수 기자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보도태도를 보여야 할까.

경향신문 기자는 "지난 25일 회의에서도 북측 기자단과 보수단체의 충돌로 빚어진 갈등 현상을 주요기사로 다루려다가 북측이 조평통 보도문 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북측의 반응만 간단하게 처리했다"며 "이 문제를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갈등이 더 커질 수 있을 것같다는 판단에서였다"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이런 상황일수록) 언론 나름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사회에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해 일방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일부 신문처럼 남남갈등과 위기의식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유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데스크, 기자와 상의하는 일 부쩍 늘어

분명한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일보 편집국 고위 간부는 "언론사마다 논조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전달이 선행돼야 한다"며 "독자들이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면 되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논조를 통해 회사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통일부 출입기자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이 기자는 "갈등관계가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 나름대로 색깔을 가져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언론이 스스로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반대로 색깔을 갖지 않는다면 자기 목소리가 없다는 외부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고민스러운 대목"이라며 "이 때문에 최근 데스크들도 기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기자들에게 문의하거나 함께 상의하는 일이 과거와 달리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이어 "갈등관계 보다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이번 충돌사태에 대해서도 단순히 친북과 반공의 갈등이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외적 파트너십을 분명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보도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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