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가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눈치보기 차원일까?

언론이 한나라당의 김두관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방침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한나라당의 홍사덕 원내총무가 한총련 학생들의 8.15 미군 기습시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두관 행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29일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도 언론은 관련 사실만 짧게 전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만이 지난 19일자 사설 <야당의 장관 해임안 신중기해야>에서 "한총련 대학생들의 미군 장갑차 점거시위 책임을 물어 행정자치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것은 책임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며 "한총련의 불법시위는 엄중하게 처리돼야 하고 책임져야 할 중대사안이지만 포괄적인 문제를 놓고 한 장관을 시범케이스로 처리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한 게 전부다. 해임건의안 제출이 옳다고 평가한 곳도 물론 없다.

"대수롭지 않아 보도 안 한다"

언론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에 대해 대다수 기자들은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A일간지 한나라당 반장은 "정치공세성이 짙은 야당의 해임건의안에 대해 시시콜콜히 따질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아직 안을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B일간지 정치부장도 "편집회의에서 '한총련 시위와 행자부 장관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아직 할지 안 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인 만큼 한나라당이 국회에 정식으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면 그 때 제대로 평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C일간지 출입기자도 "그동안 명분용 또는 생색내기용으로 해임건의안을 많이 내왔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야당 스스로 명분과 실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그런 해임건의안까지 심층분석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D일간지 출입기자는 "'한나라당의 일상적인 정치공세' '기사밸류가 낮다'는 내부 의견이 많아 정면으로 다루지 않다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18일 상임운영위에서 해임안 제출을 재고하자고 주장한 후 당내 갈등양상으로 확대된다는 판단에 따라 기사화했다"며 "하지만 해임건의안 자체의 적절성보다는 당내 권력다툼 차원에서 접근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기자의 말에서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한나라당의 해임건의안 처리 움직임을 '정치공세'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 법도 한' 태도이지만 모든 게 해명되지는 않는다. 기자들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기어코 실행에 옮길 태세를 보이고 있다. 그럴 경우 국회는 또 다시 여야간의 충돌로 멍들 게 뻔하다. 기자들의 분석대로라면 한나라당의 '헛심' 때문에 국회의사당의 지붕이 들썩거려야 할 판이다.

"어느 한쪽 손 들어줄 수 없지않은가"

상황이 이렇다면 언론이 나서 '원천봉쇄'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조선일보의 사설처럼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서 '헛심 쓰기'를 원천적으로 막는 게 도리 아닐까?

대답이 어떻게 나와야 할지 너무도 자명한 이 물음에 대해 한 기자는 '현실적인 이유'를 댔다.

E일간지 출입기자는 "해임안이 옳다고 쓰면 야당 눈치를 보는 게 되고, 반면에 그르다고 쓰면 여당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비춰져 부담을 안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특히 한나라당 내부에서 갈등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한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소지도 있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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