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보수우익단체의 '북한체제 비방' 집회에 대한 유감 표명과 북한의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 결정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서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북한의 일거수일투족과 남한 당국의 유화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해왔던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텃밭인 대구지역 정서를 감안해 반발 수위를 조절한 사실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확연히 갈린 것이다.

연합뉴스 한국일보 한겨레 국민일보 대한매일 등 상당수 신문들은 한나라당의 '예상밖' 수위조절을 충실히 전달했다. 반면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는 한나라당의 이런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가판서 공격했다가 배달판선 삭제

동아일보는 20일자 가판에서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강하게 비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목소리만 모아 기사화했다가 배달판에서 삭제했다. 동아일보는 가판 4면에 실은 <여 일각 "대통령 유감표명 납득못해"/야 "북 오만한 책략에 굴복…대한민국 대통령 맞나">이란 기사에서 한나라당 내 보수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안보의원 모임'의 성명을 빌어 "북한의 오만불손한 책략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대통령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도했지만 배달판에선 이 기사를 뺐다.

동아일보는 보수단체들이 노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왜 관련 기사를 들어낸 것일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너무 앞서갔기 때문' 이었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측은 "대변인 논평에서 과거처럼 북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의 사용을 자제하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너무 밋밋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날 논평은 북의 일방적 요구에 노 대통령이 너무 쉽게 곧바로 유감을 표명한 데 대한 '유감 표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당내 기류가 다양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기자들의 전언도 다르지 않다. A언론사 한나라당 반장은 "이날 대표,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들이 모두 관련 사실을 언급하려 들지 않았고, 대변인 논평으로 대신하려 했다"며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대구에서 열리는 U대회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언론사 한나라당 반장도 "당직자 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고 의원총회에서도 노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한나라당의 반응을 통상적으로 '강력 반발'이라는 형태로 보도하기에는 조심스런 기류도 만만찮게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C언론사 한나라당 반장은 "나라 차원의 축제이니 만큼 초치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신중했던 의원들도 적지 않았고, 예전에 비춰 이례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다수의 보수적 의원들은 북한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강경하게 발언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입맛따라 반응 끼워맞추려 한 것 아닌가"

이들의 말을 종합할 때 한나라당사의 19일 구도는 냉탕과 열탕이 공존하는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냉탕과 열탕 가운데 어디에 몸을 담글 것인지, 또는 두 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논조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C언론사 한나라당 반장은 "두 현상 중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사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언론이 자사 논조의 필요에 따라 반응을 취사선택하거나 끼워맞추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기자의 분석틀을 빌리자면 동아일보는 열탕에 몸을 담궜다가 몇시간 후 아예 문을 박차고 나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