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과 신문 4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소송건은 주장과 보도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적 문제를 넘어 정치 이슈로 급속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대통령과 측근·친인척의 비리에 대해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기로 결정했고, 신문 4사는 '언론탄압'이라며 정면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언론계는 특히 노 대통령이 지난 2일 열린 국정토론회에서 "언론의 횡포"에 굴하지 말라며 "매우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기사에 대해서는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밝힌 후 조중동과 월간중앙 등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뒤이어 노 대통령이 직접 소송을 제기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의 청와대 동향을 볼 때 언론과의 전면전을 작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의 언론 보도는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책까지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며 "언론 보도에 의해 피해를 본 장본인으로서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의 피해 당사자로서 정당하게 법적 구제를 신청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평소 공언을 상기할 때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니지만, 윤 대변인의 말로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왜 지금에 와서야 소송을 제기했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관련 보도가 쏟아질 때 소송을 걸지 않고 3개월이 지나서야 소송을 낸 데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도,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윤태영 대변인은 이런 의구심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지난 5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충분히 해명을 했는데도 일부 언론이 계속해서 악의적으로 기사화해 5월말과 6월초쯤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3개월이 걸린 것은 소송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윤 대변인의 이런 설명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일부 출입기자 사이에서는 최근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관련 보도를 계기로 노 대통령의 불만이 폭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신문사 청와대 출입기자는 "소송을 준비하는 데 3개월이나 걸린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땅 투기 의혹보도 외에도 3개국 외교 성과에 대한 비판 보도, 동아일보의 굿모닝시티 관련 오보, 386 음모론 보도 등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다가 양 실장 관련 보도로 감정이 폭발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양 실장 관련 보도는 민정수석실의 공분을 샀으며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례적으로 언론보도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B신문사 출입기자도 "언론 보도에 대한 감정이 양 실장 보도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이 청와대의 도덕성에 상처를 내려한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기자들의 분석과 상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하나의 '전조'로 해석될 만한 사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소송을 제기하기 3일 전인 지난 10일, 문화일보의 '봉황 베개' 보도에 대해 형사 고소를 한 것을 비롯해 조중동과 월간중앙에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고소 당사자는 모두 민정수석실 소속 비서진들이었다. 문재인 민정수석, 박범계 민정2비서관, 양인석 사정비서관 등이 바로 그들.

그러나 청와대는 일부 기자들의 '양 실장 관련 보도 연관성' 주장을 일축했다. 윤태영 대변인은 "양길승 씨 관련 보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윤 대변인은 양 실장 관련 보도가 나오기 전인 지난 5월말 6월초에 이미 법적 검토에 들어간 점을 환기시키며 그같은 분석이 '억측'임을 강조했다.

경위가 어떻든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소송을 제기한 만큼 언론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대응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몸소 '모범'을 보인 마당에 '잘못된 보도'에 대해 타협적인 자세로 임하기는 어려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B신문사 출입기자는 "대통령이 직접 모범을 보인만큼 장·차관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며 "정부 관계자들이 중재위를 거치지 않고 소송을 내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그것은 앞으로 부처 장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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