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 대한 검찰의 가혹행위 의혹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현대 비자금 수수 사건까지 겹친터라 가혹행위 의혹은 쉽게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며 함승희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강한 톤으로 부정하고 있기도 하다.

검찰의 가혹행위 의혹을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이 한가지 있다. 만약 고 정회장의 변호인이 검찰 수사과정 내내 입회를 했다면 이런 공방이 지지부진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결론은 물론 '아니다'일 것이다. 변호인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가혹행위를 한 몰지각한 검사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런 행위가 있었더라도 변호인이 입 닫고 가만히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 정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변호인은 입회를 하지 않았다. 고 정 회장이 자살한 당일에 변호인인 이종왕 변호사가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의혹을 제기한 함승희 의원은 이 변호사의 말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함 의원이 이 변호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한가지다. 당시 변호인이 입회를 하지 않고 접견만 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입회와 달리 접견은 수사과정 중간에 가끔씩 피의자를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만남은 간헐적이고 분절적이다. 함 의원은 바로 이 점을 제기하고 있다. 고 정 회장의 변호인이 수사 과정을 직접 보지 않았을뿐더러, 고 정 회장이 변호인을 접견했을 때에도 수치심 때문에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숨겼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혹행위 의혹 공방이 이렇게까지 발전된 상황에서 또 하나 드는 궁금증이 있다. 고 정 회장 변호인은 왜 입회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그것이다.

현행 검찰 수사규정상 피의자가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 변호인이 입회하는 게 쉽지가 않다. 지난해말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이 있고 난 뒤 변호인이 입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검사가 조사에 방해가 된다는 등의 판단을 하면 입회를 금지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 변호인 입회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언이다.

규정은 만들어 놨지만 실천력은 극히 떨어지는 검찰의 수사규정. 어찌보면 가혹행위 공방은 이처럼 허술한 검찰 수사규정의 그늘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같은 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고 정 회장의 변호인을 찾아가 '왜 입회하지 않았냐'고 묻지도 않고, 검찰 수사규정의 실천의지를 따져 묻지도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어차피 제기된 의혹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자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함승희 의원이 주장한 검찰 감찰부의 자체 조사나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후 조사 같은 규명 방안을 중계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고 정 회장이 실제로 가혹행위를 당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 이유는 고 정 회장의 자살 동기를 밝히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고 정 회장이 가혹행위를 당했다면 그 자체로서 크나큰 인권문제가 된다. 이른바 날고 긴다는 재벌 총수마저 가혹행위를 당하는 마당에 힘없는 '졸'이야 오죽하겠는가.

인권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또 다른 인권 개선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는 언론의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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