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흔들리는가. 최근 동아일보에서 신임이 두터운 10년차 이상의 중견 기자들이 잇따라 떠나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외양이지만 실상은 회사 밖으로 ‘내몰린’ 형국이라는 점에서 내부 구성원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가장 근래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은 2001년 노조위원장을 지낸 홍은택 기자. 홍기자는 “2년간 미국에서 공부하겠다”면서 지난 주 사표를 제출했다. 홍기자는 사표가 수리되는대로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다. 홍기자는 후배들 사이에서 농반진반으로 ‘차기 편집국장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내에서 좋은 평판을 받던 인물이었다.

이보다 앞서 떠난 사람은 올해 노조 공보위 간사를 맡았던 이명재 기자. 이전에 노조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던 이 기자는 지난달 초 사표를 냈다. 이 기자는 공보위 간사 재임 중 2회 발행한 소식지 ‘공보위 광장’에서 지난해 대선보도의 불공정성과 ‘신뢰받는 신문’ 설문조사를 다뤘다.

그중 지난 1월 3일 발행된 ‘공보위 광장’은 “지난 대선보도에서 ‘동아일보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사내외의 유례없는 비판이 있다”면서 자성을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이밖에 지난해 9월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기사가 고쳐진 것과 관련해 항의성 사표를 냈던 이철희 기자를 비롯해 3년 사이에 10여명의 기자가 떠났다.

지난달 25일에 발행된 동아일보 노보 ‘동고동락’의 1면 <중견기자들이 떠나고 있다>는 동아일보의 지금 상황을 잘 집약하고 있다.

노보는 “더 심각한 사실은 여러 명의 기자들이 지금도 퇴사를 준비중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 “(떠나는)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동아일보 내에서 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상징적 인물이고 둘째,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강했고 셋째, 기자가 아닌 다른 인생의 항로를 찾고 있는 것”이라면서 “무엇이 이들을 동아일보 밖으로 내몰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노보는 “더 이상 정체조차 불분명한 ‘코드’로 기자들을 옭매지 말라”며 “동아일보에 오래 남고 싶은 기자들도 ‘조직의 논리’ ‘윗사람의 뜻’이란 애매모호한 일상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동아일보를 그만 둔 한 기자는 떠난 이유에 대해 “최근 동아일보 보도와 그 배경을 보면 알 것”이라며 “밖에서 보는 동아일보 그대로 상식적인 판단으로 생각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힘이 부치긴 하지만 안에 있는 기자들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말해 여전히 강한 애정을 나타냈다. 역시 사표를 낸 다른 한 기자는 “기자를 많이 했다”는 답으로 퇴사의 변을 대신했다. 그는 아예 기자직을 그만 두는 것과 관련, “기자를 못하겠다”고 짧게 밝혔다. 기자 복귀 여부는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후배 기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한 후배기자는 “누구보다 기자로서 열심히 뛰었고, 귀감이 되는 선배들이 떠나는 게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며 “노조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후배 기자는 동아일보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가 큰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는 “기자들을 떠나게 하는 배후의 분위기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자는 “최근 그만둔 이들은 기자의 본질적인 임무를 고민하다 떠나는 것”이라면서 “기자들의 역할과 의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이 더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최근 신문업계 중견기자들의 대거 이동과 관련,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신문의 위기보다는 ‘기자의 위기’인 시대인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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