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인터뷰를 둘러싸고 언론사들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이회장 인터뷰를 보도한 25일, 조선일보도 인터뷰 형식을 빌어 경제섹션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싣자 동아일보가 '조선일보가 물타기를 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반면, 인 터뷰 기사조차도 싣지 못한 언론사들은 '왜 특정언론사만 인터뷰를 해주느냐'며 삼성그룹 홍보팀에 거세게 항의했다.

동아일보가 지난 25일 자에 '인간포석 인간의 세계' 코너의 <"한명의 천재, 10만명 먹여살린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자 같은 날짜에 조선일보가 <"제조공정 전체를 천재 한명이 대체할 것">이라는 '인터뷰 형태'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양사 모두 이회장이 직접 말하는 형식의 인터뷰 기사로 처리했다.

그러나 양사간의 신경전은 조선일보 기사에 '서면인터뷰'라는 표현이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초판에서 "이건희 회장과 서면인터뷰를 통해…"라고 했다가 삼성측의 요청을 받고 배달판에서 서면인터뷰를 '서면질의'로 표현을 수정했다.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실제로 이건희 회장과 인터뷰를 성사시킨 동아일보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애초 동아일보는 지난달 초부터 이건희 회장 인터뷰를 삼성측에 요청하기 시작했고, 서면질의서를 보낸 뒤 꾸준히 인터뷰를 추진해왔다는 게 동아일보측의 설명이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4월부터 준비했고 서면질의서는 지난달 7일 이메일로 보냈다. 삼성측 고위관계자가 처음엔 난색을 표명했으나 '인재'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100개 안팎의 질문지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 이회장의 육성대로 정리한 답변서를 받았고 삼성측은 이같은 이회장의 답변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아일보가 서면 인터뷰를 성사시켜 첫 기사를 내보낸 날, 조선일보의 가판에도 이건희 회장 기사가 실렸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25일자 조선일보 초판을 보고 깜짝 놀라 삼성측에 경위를 물어보니 조선측에서 (우리가 인터뷰한 것을 알고) '왜 동아만 하느냐, 우리도 해달라'면서 지난 주말께 서면질의를 보내왔지만 답변을 보낸 일이 없다고 했다"며 "삼성 관계자는 조선측에 연락해 '서면인터뷰'란 표현을 바꾸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배달판에서 '서면질의'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면도 아니고 속지의 21면에 배치된 기사에 대해 마치 물타기하듯이 조선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서면질의라는 표현도 다소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도 "지난 주말께 조선일보로부터 받은 서면질의서를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답변서를 보내지 않기로 했고, 당일 기사에서 인터뷰라고 표현한 것은 맞지 않아 조선일보측에 수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동아일보에서 요청이 왔을 때는 이미 우리도 사내교육용으로 이회장의 어록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아일보의 인터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게다가 동아일보의 '인간포석…' 코너는 박스기사 하나 정도로 나가는 줄 알았으나 그렇게 크게 다뤄질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는 "애초 지난 5일 이건희 회장이 사장단 회의서 '천재경영론'을 언급했을 때부터 생각해뒀다가 '천재경영'에 포커스를 맞춰 기사를 준비해왔다"며 "인터뷰라는 표현은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있다. 직접 이회장이 답변하면 가장 좋으나 재벌 총수들이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형식을 빌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회장이 한 말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것을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나름대로 준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동아와 조선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동아의 보도가 나간 이후 각 언론사에서 항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회장은 평소 자신이 언론에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려해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사 입장에선 큰 건수를 놓친 셈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평소에 친분이 있던 언론사 관계자들이 '이러면 곤란하다'는 식의 농반진반인 항의성 전화를 받고 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조현호·김성완기자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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