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사이에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의사폐업이 있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호텔롯데, 사회보험노조, 금융노련 등 노조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는데 대한 걱정스러움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과연 의사폐업과 노조의 파업을 모두 집단 이기주의를 사수하려는 혼란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한 분석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지난 달 말 의사들이 일주일 동안 집단폐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단순한 불안뿐 아니라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 단지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와 허점투성이 정부정책을 놓고 현명하게 대응방안을 모색하는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컸다.

실제로 그 대가는 무서운 재앙이었다. 아마도 폐업을 이끌었던 의사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폐업에 대해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무성했다. 하지만 단지 비난에 그쳤을 뿐 결국 정부는 의사들에 끌려다니다 신사적으로(?) 양보하는 선에서 지리한 일주일의 폐업은 마무리됐다. 언론은 미온적인 정부와 국민을 볼모로 한 의사폐업에 대해 매섭게 비판했다.

언론 과잉진압 언급없이 파업자제 촉구

그 후 롯데호텔 노동자들이 파업이 있었다. 이번엔 정부가 특공대까지 동원하는 단호함을 과시하며 철저하게 진압했다. 의사폐업에 공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언론은 이에 대해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보험노조의 파업, 금융노련의 파업이 잇따르자 이번엔 비난의 화살을 집단이기주의 탓으로 돌렸다. 그 명분은 설령 노조일지라도 국민이나 고객을 볼모로 투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일 현재 금융노련의 파업을 앞두고 있다.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금융노련이 왜 파업을 하는지보단 파업 때문에 국민만 불편해진다는 논리로 파업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1일자 사설 <국민이 ´파업´하기 전에 designtimesp=236>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거나 이익집단의 의견제시 방법이 이래서는 안된다. 노조가 정책문제를 들고 나와 파업을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측이 아닌 은행의 고객인 국민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투쟁방식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사설엔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지난 달 29일 정부가 롯데호텔에 공권력을 투입해 수많은 부상자를 냈을 때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반발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오히려 과잉진압이 파업의 도미노 현상을 부추긴 것이라는 지적은 전혀 빠져 있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사설은 이어 "강하게 나오면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시정의 쑥덕거림이 근거없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부는…결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끝맺음했다. 금융노동자는 IMF 이후 혼란의 와중에 4만 5천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도 금융구조조정은 확고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는 또다시 인원감축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고 금융노동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지금은 언론에 의해 의사들과 맞먹는(?) 파워를 가진 노동자로 뒤바뀌어 버린 셈이다. 과연 정부에게 노동자와 의사가 모두 무서운 존재로 비춰질는지는 되새겨 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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