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증 좀 볼까요? 없어요? 신분증 확인합시다. 가방엔 뭐가 있죠?"

미디어오늘 기자로 근무한 지도 벌써 6주 째가 돼 간다. 배정받은 출입처나 방문하는 곳에서도 이제 웬만한 사람은 날 알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 1차 준비접촉을 취재하려고 통일부 기자실을 방문했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별 이야기를 다 하는 거였다. 기분 나쁜 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며...

난감했다. 으레 만만해 보일 순 있겠지만 명함에 신분증까지 보여주고 안내소에서 만날 선배기자에게 전화까지 하게 될 땐 취재할 맛이 뚝 떨어지기 일쑤다. 물론 전화한 뒤 들어가긴 했지만 왠지 그 선배기자를 보기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그래서 ´수습´이던가.

또 다른 출입처에선 더욱 기분나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정문에서 가로막고 대학생 검문 검색하듯 꼬치꼬치 캐묻는 거였다. 나보다도 나이가 한참 어린 의경들이 정문 앞에 지켜 서서 단 한 발자국도 못 들어가게 할 땐 정말 부아가 치민다. 게다가 내 목소리가 조금 커지자마자 그 나이 어린 의경들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나이도 어린것들이´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참고 말았다. 결국 ´방문 신청서´에 방문목적까지 쓰고 방문하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오 주여!


´뻔뻔한´ 기자가 되라

흔히 선배들은 내가 이런 경우를 당한 것에 대해 보다 거만해져야 한다는 투로 조언해준다. 다시 말해 본래 출입기자가 아니어도 마치 출입기자인 것처럼 뻔뻔하게 우기고 일단 들어오라는 얘기다. 아직까지 얼굴에 철판이 안 깔아져서일까? 뻔뻔하게 거짓말했던 지난번 내 얼굴을 떠올리면서 어쩌나 하는 소심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면 난 기자니까. 물론 기자가 뻔뻔하고 거만한 게 특권처럼 용인될 순 없어도 어떻게든 취재원에게 접근해서 취재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팔자가 아니던가? 한 선배는 기자 일을 잘 하려면 거지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아무래도 신사는 못될 것 같다). 당당히 아는 바를 털어놓으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러면 얘기하지 않는다. 은근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취재원을 살살 구슬리기도 하고 때론 구걸(?)도 해야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자는 거지와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고 한다. ´자존심´. 그것은 기사다. 개처럼 모은 정보를 가공해 그 어느 사람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기사 한방으로 그간의 서러운 취재과정에 설욕하는 것이다. 물론 원한을 사고 복수를 하는 단순한 분풀이가 아닌 진정 ´진실´이라는 최고의 증거를 통해서일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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