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개시되면서부터 국내 언론사들은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인용해 관련기사를 홍수처럼 쏟아냈다. 이라크쪽의 입장이나 목소리 보다는 미 국방부 발표나 미 언론보도를 인용했다가 며칠 뒤 아랍권 언론을 다시 인용해 같은 사실을 완전히 뒤집는 등 보도에 혼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라크군 51사단 집단투항´ ´이라크 남부 바스라 함락´이라는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미·영 언론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으나 25일 항복했다던 이라크 51사단장이 아랍권 언론인 알자지라 방송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하면서 오보임이 드러났다. 또 함락됐다던 바스라, 나시리야, 움카스르 등 이라크 남부에서도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가 나가 시청자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는 25일 자에 각각 ´기자의 눈´과 ´취재일기´를 통해 이라크 침략 보도가 미국언론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을 시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일간지 국제부 기자는 "유력 해외언론도 전쟁과 국익 앞에서는 결국 당국의 보도통제를 받는다는 게 이번 이라크전 보도로 드러났다"며 "그럴수록 균형 있게 보도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미군의 침공상황을 시시콜콜 실황중계하는데 급급했던 방송사는 24일 밤 9시 뉴스부터는 보도의 초점을 이라크 현지의 참혹한 피해상황과 반전움직임 등을 비중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미국측 입장에 의존해 전황중계에 치중하는 보도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시청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쳐 24일 메인뉴스부터는 반전움직임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보도의 방향을 틀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날 MBC 오전 뉴스에서는 시청자들로부터 미국입장에만 치우치지 말고 균형있는 보도를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앞으로 ´유념하겠다´는 앵커멘트도 있었다.

앞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 분과위원회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SBS가 이라크전 관련기사 27꼭지 중 17꼭지를 전쟁상황 기사로, MBC는 21꼭지 중 12꼭지를, KBS는 27꼭지 중 12꼭지를 각각 내보냈고, 이마저도 미국중심의 시각을 그대로 전달했다고 비판했다. 신문사의 경우 지난 23일엔 일요판을 내기도 하는 등 우리 언론이 이라크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사를 실시간 공급하고 있는 통신사인 연합뉴스 내부에서도 편향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현재 연합은 알자지라의 보도를 인용할 때 서양통신사를 거쳐 재인용하는 형태"라며 "국내 방송들조차 하루 종일 CNN을 생중계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시각으로 이라크전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방송사들은 현재 지난 해 아프카니스탄 전에 두각을 보였던 알자지라 방송과 화면 전재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해 CNN을 거쳐서 알자지라의 화면을 공급받고 있다. 이밖에도 언론사들은 군수산업의 박람회를 방불케할 정도로 미군의 최신 폭격기와 무기를 소개하는 데 지면과 화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 신문은 전쟁이 발발하면서 은근히 정부의 파병안을 두둔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21일자 국민일보와 조선일보, 22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파병철회 요구에 대해 한미관계의 복원과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며 파병을 정당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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