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지난 97년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인 이른바 ´세풍사건´의 일부 자금이 언론인에게도 흘러들어 간 것이 4년여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미국으로 도피했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국내 압송으로 다시 수사에 착수한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 박영관)는 이씨에 대한 1차 소환조사를 마친 뒤 가진 지난 24일 기자 브리핑에서 "세풍자금이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들어간 것을 파악했으며, 현재 죄가 되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은 이날 정치인들의 세풍자금 유용 수사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인을 거론했고 기자들이 이를 재차 묻자 "언론에 다 나온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러나 신 차장은 이들에 대한 소환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지 않았으며, 법 적용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신문사 검찰출입 기자는 "검찰이 현재 수사를 벌이고 있는 언론인은 10명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들은 이씨로부터 수십만원에서 1000여만원대까지 돈을 건네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일부 수사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들 언론인들의 명단을 확보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본지는 지난 99년 7월 현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인 L모씨가 15대 대선 직전인 97년 12월 10일 이씨로부터 1500만원의 돈을 수표로 받아 시중의 모 은행 지점에 개설한 자신의 계좌에 입금했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L씨는 97년 당시 정치부 차장으로서 선거정당팀장을 맡고 있었다.

본지는 이 보도에서 "이같은 사실은 세풍사건을 수사하던 사정당국이 이 전 차장(이석희씨)의 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으며 L씨 이외에도 3∼4명의 언론인에게 돈이 건네진 사실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L씨는 당시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관련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L씨는 현재 소화기 계통의 지병으로 3주전부터 병가를 내고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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