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방송스태프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KBS 4개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오는 6월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번 근로감독이 실질적 현장개선 계기가 돼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방송 스태프 노동환경 문제를 당·정·청 민생현안회의 주요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며 “을과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16일 오후 서울 은평구 희망연대노조 회의실에서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을 만나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민생바람 2차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 박홍근 을지로위원장, 제윤경 의원과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 안병호 영화산업노조위원장 및 방송스태프들이 참석해 1시간2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을지로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최근 ‘디졸브’(dissolve)라는 용어를 알았다. 밤샘 촬영하고 나서 쪽잠 잔 후에 바로 또 촬영 들어가는 열악한 방송현장 노동실태를 이렇게 표현한다고 들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죽도록 일하다가 진짜 죽는 사건사고를 우리는 실제 접했다”며 “을지로위원회는 그간 드라마 제작현장에 만연한 불공정 행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해왔고 지난 4월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이끌어냈다. 현재 KBS 드라마 제작현장 4곳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진행 중이다. 오늘 간담회는 중간 점검과 함께 을과 한 번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취지를 밝혔다.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16일 오후 서울 은평구 희망연대노조 회의실에서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을 만나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민생바람 2차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16일 오후 서울 은평구 희망연대노조 회의실에서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을 만나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민생바람 2차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스태프 노동자들에게 이번 특별근로감독 의미는 각별하다. 지난해 특별근로감독은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진행됐기 때문에 방송사나 제작사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실질적인 현장 감독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이유다. 앞선 특별근로감독의 한계로는 ‘턴키’(turn-key) 계약을 체결한 팀장급(조수급) 스태프를 사용자로 판단한 점이 지적된다. 팀 단위 용역 계약 관행인 턴키는 노동자에게 급여 관리와 법적 사용자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점에서 ‘위장 도급’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근로감독 기간 중에도 3개 드라마 제작현장은 근로감독 돌입 이후 개별 용역 체결이 이뤄졌으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딸’ 스태프들은 턴키 계약을 강요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최근 근로감독에서 팀장급 스태프들이 ‘당신은 사용자입니다.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고, 근로감독관들에게 면담을 요청해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근로감독으로 실제 작업 지시나 관리·감독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도 “이번 특별근로감독은 보다 철저하고 심층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또한 표준계약서 도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가 서로 떠넘기지 말고 상호 유기적 협력 통해 지속 점검·관리해서 방송스태프들이 최우선 요구하는 표준근로계약 도입과 개별 근로계약 체결이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현장 스태프들은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제작 현장의 부당한 노동환경을 전했다. 한 스태프는 “이틀 전 ‘닥터 프리즈너’ 종방연 하고 왔다. 3월 일한 걸 4월에 받기로 했는데 (임금) 미지급 상태에서 촬영이 중단됐다가 5월2일에 다시 촬영을 나갔다. 제작사가 이날 10시까지는 지급해주겠다고 해서 촬영하는데 10시가 지나고 12시 가까이 돼 지급됐다. 프로그램이 종방된 뒤에는 모든 스태프들이 남은 임금만 잘 주면 좋겠다면서 불안해한다”고 호소했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그는 “‘닥터 프리즈너’ 연출 감독이 오래 찍기로 유명했는데 근로시간을 지키게 되더라. 초과된 시간을 보상받다보니 근무시간 자체를 줄이는 게 가능할 거 같았다”며 “그전에는 근로시간 단축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하면서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한 방송작가는 “구성작가로 일한 지 13~14년 정도 됐는데 계약서를 본 적이 없다. 선배들도 계약서를 본 적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구두로 ‘얼마 줄게’ 하는 게 너무 당연했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했다. 제일 힘든 점은 불법해고, 부당해고가 일상다반사라는 점”이라며 “얼마 전 작가들 익명 카톡방에 올라온 얘기가 있다. MBC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는데, 프로그램 담당하는 외주제작사 팀장이 문자로 작가들을 새로 세팅했으니까 그만두라고 해서 작가 전체가 해고된 사건이 불과 며칠 전에 있었다”고 전했다.

방송사 사정으로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못할 경우 스태프들이 겪는 생계 곤란도 지적됐다. 박세찬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스포츠 행사나 정상회담 등 특별편성으로 원래 있던 프로그램들이 못 나가면 작가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 반토막나는 경우가 있다. 최저임금 아래로 떨어지고 생활비도 안 나온다. 서울에서 생활 못한다”며 “독립PD들도 똑같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도 똑같다. ‘VJ특공대’가 없어질 때는 없어지는 날 얘기했다. 한달 정도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는데 갑자기 방송 못해도 비용을 방송사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 스태프들이 일상적 불안감을 토로한 가운데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대외협력국장은 “노조 일에 나섰다가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방송 제작 등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블랙리스트’라고 얘기들을 하는데 지부장이 일 끊겨서 현장으로 못 돌아가는 것처럼 증언해주시는 분들은 가능하면 얼굴이나 이름이 안 나가도록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 국장은 “지난해 7월 출범한 방송스태프지부가 설립한 지 햇수로 2년이 지나가고 있다. 방송사 뉴스에서는 딱 한 군데 YTN에서 유일하게 기사화하고 다른 방송사는 전혀 사례가 없다. 조금 더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고, 현장 스태프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초반 사진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마치고 빠져나간 뒤, 회의장에 남은 방송사 카메라는 JTBC 1대 뿐이었다.

스태프들 이야기를 들은 최선경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장은 “방송사로 하여금 외주제작사에게 금액을 지급하는 내용을 명시해 검토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행하려 한다. 방송사의 경우 주로 지상파 3사가 매출이 많이 감소하고 있어 이 부분이 제작비 증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부분을 외주제작가이드라인에 넣어서 재허가 및 재승인 조건으로 하는 것들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편도인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장은 “불공정거래 행위 관점에서 불가피하게 결방됐을 때 보상에 전반적으로 공정거래가 정착될 부분을 우선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편 과장은 “다단계 하도급 특성 때문에 근로감독 사각지대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6월까지 목표로 4개 현장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어, 진행 중인 상황을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 달라. 고용노동부 뿐 아니라 방통위, 문체위도 연관이 있다. 넓은 시각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스태프 노동환경 개선을 당정청 민생현안회의 의제로 올려놓고 다루고 있다”며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공정거래를 어떻게 정착시킬지, 또 하나는 스태프들 근로환경 어떻게 개선할지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할 거 같다. 결국은 집권여당이나 정부 차원에선 잘못된 관행·제도를 시스템 개선 통해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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